실력은 허접해도 꿈만은 <4>
■ 2005년 11월 23일, 06수능
작년과 다른 시험 장소에 배정받았다,,, 평소에 항상 8시 30분에 일어났던 나는 이 날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동적으로 6시에 일어났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시험 장소에 도착하니까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놀라운 것은 바로 우리 때에 이미 대학을 간 친구들이 응원을 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경희대를 갔던 K와 고려대를 갔던 D가 응원을 와 있었다, 감격의 포옹을 나누고 악수를 하고 응원을 받았다, D가 외친 파이팅에 나도 파이팅 포즈를 취하면서 응답했다. 그리고 고사장으로 갈려고 했는데 그 때 D는 나에게 뒤에 고3 때 담임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서 뻘쭘하게 고3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B선생님과 악수를 나누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 들었다.
내 몸에는 지금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밤에도 K교주님의 수능대박송 3탄을 계속 돌려서 들었었고 집을 나오기 전에도 계속 듣다가 나왔다. 이제 K교주님의 강의는 보지 않았지만 그 분이 만든 수능대박송을 들으면서 미칠듯한 자신감이 끌어 오르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시험장에 들어가니까 역시나 내가 제일 꼴지로 왔었다. 8시가 다 되어 있었는데 내 자리를 보니까 작년과 마찬가지로 또 왼쪽 벽에 중간 쯤에 배정을 받았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벽이 있는 자리에 또 앉게 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학교는 우리 지역에서 제일 건물이 좋은 학교로서 듀오백 의자와 책상을 갖추고 있었다. 착석감이 매우 좋았고 의자 높이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해서 최상의 좌석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호흡을 고르면서 차분하게 많은 생각을 했다. \'아는 것은 다 맞다, 항상 모든 답에는 근거가 있다. 침착하자\' 등,,,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대망의 언어 1교시가 시작되었다.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쉬운 느낌이 들었다,,, 답이 너무 분명하게 보여서 내가 실수를 했나 싶을 정도였다,,, 너무 대놓고 \'내가 바로 답입니다~\'하는 선지가 많아서 약간 당황했다,,, 혹시 평가원에서 낚시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정말 \'답 같은 것만\' 골라서 체크를 했다.
1교시가 끝나고 나서 밖에 나와서 재수를 했던 친구 K와 K를 만나서 언어영역 시험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들은 작년이나 비슷하거나 더 쉽다고 말하였다,,, 친구들은 시간이 남았다고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책을 적절하게 읽었으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독서를 거의 하지 않은지라 속발음이라는 해괴한 병에 걸려 눈 -> 속마음 -> 뇌 이런 식의 3단으로 글을 읽어서 눈 ->뇌로 글을 읽지 못하는지라 시간은 딱 맞춰서 풀고 마킹을 했었다. 항상 언어영역은 속발음 때문에 느리게 읽었지만 시간을 다 활용하면서 문제를 정확하게 풀도록 노렸했고 또 이 날 그대로 실천을 하였다.
그렇게 쉬고 나서 2교시 수리영역을 시작했다. 나를 항상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수리영역,,, 한 번도 90점대를 받아본 적이 없고 잘 나와야 80점을 겨우 넘고 9월 대성에서는 53점, 10월 중앙에서는 40점대를 받은 아픈 기억이 있는지 라서 심기일전했다,,, 사설은 내 머리로 풀 수 없는 것도 많았지만 평가원과 수능은 내 머리로 어떻게 해서든 결국에는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나왔기 때문에 침착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5번까지 무난하게 풀었다,,, 그런데,,, 6번이 막힌다,,, (아직도 기억하는 행렬문제) 패스~ 어라? 계속 막힌다,,, 패스,, 패스,,, 이렇게 계속 모르는 걸 넘기고 아는 것만 풀다 보니까 너무나 못 푼 문제가 많았다,,, 아,,,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또 안되는 것인가,,, 정말 시험장에서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안 풀리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못 푼 문제가 많았다,,, 투명유리상자 문제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풀라고 내놓은 것인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다. \'지금 아이큐 테스트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투명유리상자 문제는 찍어서 틀렸다.) 주관식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어찌어찌해서 다 풀었는데 객관식을 너무 많이 찍었다,,,ㅠㅠ
수학에서 안드로메다로 가고 나서 정신이 없었다,,, 친구와 밖에 나와서 밥을 먹으면서 수학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였다. 나는 완전 대성모의고사 푸는 줄 알았다고 하소연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시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은 외국어와 사탐, 그리고 제 2외국어를 열심히 풀어서 내가 100여일 동안 뿌린 노력의 결과를 거두어 들여야만 했다. 사실 수학을 풀고 나서 직감적으로 망한 것을 느끼고 고려대 법대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임을 알게 됐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작년보다는 성적이 더 잘 나올 수 있기 위해 노력했다.
3교시 외국어 영역이 시작됐다,,, 듣기부터 일난 무난하게 들렸다. 이 학교가 위에서 언급했지만 우리 지역에서 시설로 치면 본좌였고 스피커가 사방에서 들리는 서라운드 시스템이라서 듣기가 사람이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100 여일 동안 거의 매일 들은 듣기에 대한 노력도 더해져서 듣기를 매끄럽게 풀었다. 문제는 독해와 문법, 어휘였다. 30번의 스마일 그림이 있는 신유형이 등장헀고 빈칸 추론 문제도 굉장히 어려웠다.
06수능 외국어영역에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려고 갑자기 꼼수를 쓴 사건이었다. 33번의 \'she\'의 심정을 묻는 문제에서 마지막 문장만 읽었더니 \'차 문이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심장 소리가 빨라졌다\'라는 해석을 통해서 선지 5번인 \'concerned and frightened\'를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답을 내리고 뭔가 찝찝해서 위에서 읽어보니까 \'그녀가 지금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내용\' 임을 알게 되어서 답을 고쳐서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ㅋㅋ (한 두 문장 읽고 답을 내는 짓을 절대 하지 말기 바란다, 평가원은 바보가 아니다.) 그 문제만 꼼수를 썼다가 호되게 당했고 나머지 문제는 처음부터 답이 나올 때까지 다 읽었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와 시험지만이 한 공간에서 싸움을 무아지경의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너무나 촉박했다,,, 수험표 뒤에 답을 옮겨 적을 시간도 없었으니 얼마나 시간이 촉박했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다음 시험은 사회탐구 영역이었다. 그 동안 정말 열심히 교과서를 정독했었다. 국사랑 근현대사 모두 꼼꼼하게 4회독을 했었고 경제랑 사회문화도 열심히 했다. 국사는 무난하게 풀었다. 그런데 7번 문제에 네모 칸안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니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지 몰랐고 호론으로 추리를 하고 (맞나? 기억이,,, 확실할듯) 문제를 풀었는데 틀렸었다. (내가 한 것처럼 푼 사람이 오답자의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이 문제는 정약용의 \'기예론\'을 모르는 사람은 풀 수가 없는 문제였다. 국가 교과서에 정약용의 \'기예론\'이라고 명칭이 딱 되어있지 않고 그저 정약용이 이것을 맞춘 국사 ㅚ수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 문화파트 4단원에 이렇게 있다. 나도 이 부분을 4회독이나 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똑같이 교과서를 봐도 독서를 통해서 인지능력이 매우 높은 사람들은 기억을 거의 다 하게 되지만 나 같이 인지능력이 그 수준이 아닌 사람은 아무리 봐도 기억에서 흐릿한 부분(본 듯 만 듯 기억이 날랑말랑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은 삼수를 하면서 교과서 11회독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다. 이런 능력들이 언어영역, 그리고 나아가서 고시 같은 더 큰 시험을 볼 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5번 문제는 외울 때 잘못 외워서 반은 찍는 심정으로 풀었다. (결국 틀렸다 ㅡㅡ;) 근현대사는 무난했다. 역시 교과서 안에서 모두 다 나와서 푸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나의 사탐 주력과목은 나를 기쁘게 했다. 경제는,,, 정말 힘겹게 풀었다,,, 내가 잘 했는지 못 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리고 사회문화도 정신없이 풀었다,,, 무슨 분석문제가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너무나 당황했다,,, (06년도에는 이것이 신경향이 되어 버리고 마는데 06수능에서 그 맛을 미리 보여주게 된다.)
사탐이 끝나고 나니까 시험이 다 끝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제 2외국어 한문이 남아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일본어 대신 한문을 선택했는데 한문을 하면 나중에 살아가는데 도 유익할뿐더러 내가 또 한문을 일본어보다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다. 다른 얘들이 제 2외국어 찍고 자는 동안 나는 열심히 풀었다.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매일 봤던 한문,,, 머릿속에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앞에 있는 한자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은 무난하게 풀었고 뒷쪽에서는 교과서에 있는 지문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쉽게 풀 수 있었다. 자습서를 2회독 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교과서에 없는 시나 지문은 자습서에 있는 문법부분과 한자를 끼워 맞춰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여 풀었다. 최무선 이야기와 한용운의 시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 2외국어를 끝으로 시험이 끝이 났다,,, 드디어 06 수능이 끝난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인파들 속에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수험생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계셨다. 나는 나오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1년 전과 변함이 맑았고 닭은 밝았다. 그리고 오늘 시험결과가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수학을 망쳐서 고려대가 힘들 꺼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혹시 모른다,,, \'내가 찍은 것이 거의 다 맞아서 수학뽀록이 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학교를 나섰다.
나가는 길에 수학 선생님이 어둠 속에서 나를 알아보시고 나의 등을 토닥이시면서 격려해주셨다. 시험이 어땠냐는 질문에 수학이 많이 어려웠다고 대답을 드리자 선생님은 오늘 수학이 많이 어려웠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역시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과 만나서 삼계탕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동생은 시험에 대해서 너무나 궁금해 하셨다. 나는 수학을 못 친 거 같고 다른 과목들은 모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부모님은 수학을 못 친거 같다는 내 말에 걱정이 크신 모양이었다,,, 항상 수학 때문에 좌절하고 힘들었는데 올해 또 수학을 잘 못 친 거 같다고 말을 했으니 말이다,,,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메가스터디에 접속을 하였다. 언어는 수험표 뒤에 적어올 수 있어서 침착하게 체크를 하고 확인버튼을 눌렀다. 역시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고 화면이 바뀌는 것을 보는 순간 손을 서서히 내려서 점수를 확인했다,,, 99점,,, 우와아~! 99점이다,,, 1점짜리 한 개를 틀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에서 미친듯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방방 뛰었다. 99점이다,,, 우와!! 살면서 이런 언어영역 점수를 다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3 6월 달에 종로에서 59점으로 언어 5등급을 받고 올해 10월 달에 언어 75점을 받고 충격에 빠진 기억이 생생했었는데 말이다,,, 너무나 기뻤다,,, 드디어 하늘이 나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나에게 이런 점수를 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덩달아서 기뻐했다,,,
이제 수학을 매길 차례였다,,, 답은 적어왔지만 객관식을 너무나 많이 찍었다, 주관식은 다 풀어서 그나마 좀 나았다,,, 하나하나 답을 체크하고 채점하기 버튼을 눌렀다,,, 역시 손을 가리고 화면이 바뀌어서 점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밑에서 위로 손을 올려가며 하나씩 확인했다,,,
주관식이 다 맞았다,,, 하지만 주관식 뒤에 객관식이 좀 틀렸다,,, 그래도 주관식이 다 맞은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대박의 예감이 들었다. 손을 순간적으로 다 떼고 점수란을 쳐다봤다. 74점,,, 순간 머리가 멍했다,,, 못 친 것을 예감했지만 작년에 69점에 비해서 5점 밖에 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문제를 확인해 보니까 내가 찍은 문제 중에서 4점짜리 3문제를 맞았다,,, 그리고 푼 객관식 문제 중에서 3문제를 틀렸다,,, ㅡㅡ; 쎔쎔이었다,,,
74점,,, 틀린 문제를 차근차근 살펴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사고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고려대 법대를 또 못 간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기만 했다,,, 이번에는 수학을 매기고 울지는 않았다. 그 만큼 이것이 나의 머리와 노력으로 이루어낸 정당한 점수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틀린 문제를 계속 보고 보면서 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세 번째 외국어를 매기기 시작했다. 수학 점수가 그렇게 나오고 나니까 이제는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채점을 했다. 외국어는 시간이 촉박해서 수험표 뒤에다가 답을 못 적어 와서 내 기억력으로 다시 답을 체크했다. (신기한 일이지만 올해 07수능에서 언어영역도 이렇게 했는데 단 하나의 오발탄도 있지 않았다. 그만큼 수능에 가만 인간의 집중력은 무아지경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수험표에 정답 못 적었다고 속상해 할 필요없다. 채점할 때 다 기억난다. 문제를 보면 말이다.)
93점이었다,,, 와!! 1등급은 된 것 같았다,,, K교주님을 따르면서 영어공부를 해도 되지 않았던 고3 시절이 생각이 났다,,, 역시 이번에 내가 반수를 하면서 맨투맨을 정독하고 문법 문제집을 풀고 최대한으로 논리적 사고를 하면서 문제를 풀고 보카를 통해서 어휘를 대거 습득한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실력대로 나온 거 같아서 너무나 기뻤다. 역시 독학으로 스스로 깨우친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
다음으로 사탐을 매겼다. 국사 44점, 근현대사 50점, 경제 47점, 사회문화 42점이었다. 근현대사 50점에서 너무나 기뻤고 경제 47점에서 황당해했다. 계속 피똥 싼 과목이 경제였는데 운이 좋았는지 경제를 1개 밖에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것을 또 느끼게 되었다. 작년에 만점을 받은 사회문화를 매겼을 떄 42점이 나온 걸 보고 많이 실망했다. 그런데 틀린 것을 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 나의 머리이고 실력이었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문을 채점했다. 점심 먹으면서 저녁 먹으면서 매일매일 본 한문,,, 정말 열심히 했다. 매기고 나니까 46점을 받았다. 2개를 틀렸는데 모두 교과서에 없는 것이고 한문을 공부한 기본 능력으로 해석을 하여 풀어야 되는 문제였다. 인정하였다. 다 내 실력이었으니까
▲ 06수능 성적표, 결과가 나오고 나서 가장 놀란 것이 국사 2개를 틀렸는데 3등급이라는 것,,, ㅡㅡ;
한 달 뒤에 등급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설마 했는데 언어영역 1등급 컷이 98점이었던 것이었다. ㅡㅡ; 풀면서 그렇게 쉽다고는 생각 못했는데 쉬웠던 모양이었다. 수학은 백분위 90으로 턱걸이 2등급을 받았다,,, 1등급 컷이 85였다,,, 역시 시험이 어렵든 쉽든 잘하는 얘들은 잘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외국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았다. 그것도 백분위 97! 1등급 컷이 91로서 적절하게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K교주님 강의를 듣고 온갖 발악을 해서도 못 받은 외국어 영역 1등급을 이 때 처음 받게 된다. (공식적으로 성적표가 나오는 시험에서 1등급을 받은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역시 나의 공부 방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사는 사탐과목 중에서 제일 열심히 했는데 3등급 받아서 너무 아쉬웠고 근현대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경제는 1개 밖에 안 틀렸는데 2등급이었다 ㅡㅡ; 48점이 1등급이었다,,, 역시 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문화는 44점이 1등급 컷이었는데 2점짜리 한 문제를 더 맞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내 실력이었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ㅠㅠ (07 수능에서 이 백분위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ㅠㅠ)
■ \'네 그릇을 알라!\'
성적표를 받으러 12월 달에 친구들과 함께 3학년 지도실을 방문했다, 부장선생님은 성적표를 가지러 교육청에 가셨고 일찍 온 우리들은 소파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 오시고는 성적표를 복사해서 얘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한마디씩 해주셨다. 그 때 이미 내가 시험을 괜찮게 친 것이 지도실에 알려져 있어서 선생님이 성적표 나누어 주시면서 \'수능대박났네\' 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고3 때 담임 선생님은 이 때도 고3을 맡으셨는데 나에게 \'잘 받은 점수 헛되지 않게 대학 지원 잘하라고 하셨다.\' 이 때 성적표를 받고나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영어 선생님이 오시더니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꺼내어 나누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노, 1년 동안 재수해보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제, 자신의 그릇을 아는 것도 다 능력이대이~\"
이 말을 제대로 들은 친구는 별로 없어 보였는데 나는 영어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 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그릇,,,? 그릇이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의 2탄 격인 정ㅇㅇ선생님의 \'네 그릇을 알라\'였다. 영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르게 해석해보면 \'수능에 대한 그릇이 작은 사람은 해도 해도 릇을 넓힐 수 없다. 이미 너희들의 그릇은 다 차 있다. 또 해봤자 안 된다,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자기 그릇에 맞는 대학가서 열심히 해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심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말이다. -_-;)
이 날 영어선생님의 말씀은 나에게 \'인간이란 동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분야에 대한 그릇\'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릇이라,,, 사람에게 정녕 그릇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노력하면 인간이 못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 정크라테스님의 말씀,, 과연 그런 것일까,,,?
■ 논술을 치러 서울로, 그리고 다시 고려대를 찾아가다.
오르비를 통해서 인터넷에 온라인 배치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용하게 되었다. 무료로 나왔던 청솔학원과 그리고 종로를 이용했다. 고려대 법대랑은 너무 차이가 컸고 법대로의 진학을 계속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법대를 살펴보게 되었다. 가군에 성균관대 법대는 점수가 많이 모자랐고 한양대 법대도 점수가 청솔에서는 -5점 이상 차이가 나고 종로에서는 반영비율을 계산하니까 -3.2점이었다. 나군에 쓸 곳을 찾아보니까,,, 없었다,,,ㅡ.ㅡ 고3 때 썼던 중앙대 법대를 쓰자니 쓰기가 좀 그랬다. 될 점수이었지만 되어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군에 서강대를 쓰자니까 점수가 턱없이 모자랐다. 거시기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결국 가군에 한양대 법대 한 군데만 쓰고 원서접수를 마감하였다,,,-0- 원서접수를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한양대 법대 한 군데만 쓴 것에 대해서 물었는데,,, 내가 낸 이유는 점수는 모자랐지만 왠지 모르게 논술을 잘 써서 될 꺼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믿는 대로 될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령 떨어진다고 하면 운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고려대를 향해 달려볼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논술을 치러가기 전까지 나는 06수능 수리 나형 문제를 뽑아서 학교 열람실에 와서 풀었다. 선생님들과 재학생들이 또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면역이 되어서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정말 끙끙대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는데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정말 단 1개의 문제도 내 스스로 풀어 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계속 풀어 나갔다. 06수능에서 너무나 많이 못 풀어봐서,,, 너무나 허탈해서 다시 해 본 도전이었다.
수능을 치고 나서 거의 한 달만에 투명유리상자 문제를 풀었을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와 진짜 수능에서 못 풀만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실력이었다. 다른 문제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학 10-나와 혼합되어서 나온 행렬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오묘한 이치를 내 스스로 깨달았을 때의 그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수학 문제를 만들어낸 평가원 분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답운 문제를 만들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 바로 사진에 보이는 17번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를 거의 한 달만에 스스로 깨달아 풀면서 평가원 분들을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2006년 1월 7일 토요일, 한양대에서 논술을 시험을 봤다. 작년처럼 학교에서 대성 논술과 면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논술공부를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후에는 일기를 쓰고 요가를 하고 06수리 나형을 풀고 오르비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따로 논술을 공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수능공부를 하면서 얻은 사고력을 믿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07입시에서도 이어진다.)
http://www.orbi7.com/bbs/zboard.php?id=pls_amu_imported&sn1=&divpage=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2735
▲ 메가스터디 강사 이석록과 강남대성에서 재수하여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아들 형철군의 논술에 대한 문답 기사, 이석록씨 아들인 형철군이 말한 것처럼 수능공부가 알게 모르 게 논술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과 절대로 학원논술로는 학생들의 실력을 키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논술과 수능을 잘 보는 학생들 중 거의 대부분이 형철군처럼 \'원래\' 잘하는 학생이다. 그리고 형철군이 내신도 이미 서울대 법대를 갈 정도가 되었고 재수학원의 본좌인 강남대성(원래 잘하는 학생들의 모임)을 들어갈 정도의 수능성적이 이미 나왔는데 논술을 제대로 쓰지 못할 머리와 사고력을 갖고 있겠는가?
형철군의 이 기사를 그 당시 인터넷으로 보면서 \'저런 사람들이 언론에 많이많이 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도저히 우리나라의 사교육 광풍을 도저히 잡기가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런 식의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람들은 계속 논술도 수능도 과외 없으면 학원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였다,,, 물론 과외와 학원도 어느 정도 시장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건만,,, 너무 지나치니까 문제가 아닌가? 저렇게 살아있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인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바로 \'자기 합리화의 동물\'이니까. \'▶이석록씨 아들 형철군=맞아요.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해요.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단 몇 권을 읽어도 스스로 깊게 생각하면 다른 데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그 날 한양대에서 논술을 쳤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매끄럽게 쓴 것으로 기억한다. 제시문을 읽고 머리로 사고하는 순간 정말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시야를 가진 느낌이 들었고 개요를 잡고 연습지에 미리 좀 적었다가 본 시험지에 적음으로써 시험을 마치게 된다.
한양대를 나와서 나는 연세대를 시작으로 하여 동생과 함께 대학탐방을 나섰다. 이렇게 서울에 올라온 김에 대학구경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세대와 성균관대를 들리고 마지막으로 고려대를 들렸다. 고려대는 동생에게 구경도 시켜주고 싶었지만 내가 또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 때 해가 어둑어둑하게 져가고 있을 무렵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석양이 지는 가운데 고려대에 들어온 나는 1년 전 경희대 논술을 치고 나서 고려대 견학을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무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었던 이 곳,,, 고려대에 도착해서 갑자기 느껴졌던 정말 아쉬운 점은 내가 바로 재수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다,,, 10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나에게 촉박했다고 생각했다,,, 경희대 다니던 학생이 103일 만에 공부해서 고려대 법대를 가면 그는 머리가 매우 좋거나 원래 고려대를 갈 실력이었는데 수능에서 운이 안좋아 디어서 경희대로 간 학생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고려대 캠퍼스를 또 한 바퀴 돌았다,,, 너무나 오고 싶었던 고려대학교,,, 그러나 이렇게 또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기만 했다,,, 다시 고려대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능력이 안 되면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일지,,, 영어 선생님 말씀처럼 그릇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한양대는 되어도 갈 생각을 안 하는 쪽으로 생각이 굳혀갔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서 있는 이 고려대라는 곳이 너무나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수까지가 마지막 노선이라는 것을 알았고,,, 마지막으로 내 한계까지 달리고 싶었다,,,
■ 대학합격과 고민,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06년 1월 14일 토요일, 11시에 한양대 발표가 났다. 미리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는 주민등록번호를 쳐서 합격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최초합격이었다! 논술을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대로 적중한 것이 틀림없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부모님이 너무 기뻐하셨다.
▲ 한양대에 합격한 날 학교 열람실에 가서 쓴 일기, 이 때 이미 합격해도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삼수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고,,, 마지막 기회까지 쓰고 싶었다,,, 내 그릇이 어디까지인가를 알고 싶었다.
일기에다가도 확실하게 가지 않겠다고 쓰고 나 자신도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등록기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만 했다,,, 주위에서는 한양대 법대도 좋은 곳인데 왜 삼수를 하려고 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셨다,,, 그러나 나는 고3 때 세운 최초의 목표였던 고려대 법대가 너무 가고 싶었다,,, 경희대 논술을 보러 가서, 한양대 논술을 보러 가서 항상 구경만 갔던 고려대 캠퍼스를 고대생이 되어서 직접 밟아 보고 싶었다.,,,
대학발표가 다 나서 우리 학교 결과를 보니까 원래 잘 못하는 친구들은 기숙학원을 다니거나 그냥 학원을 다니거나 독학을 해도 크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원래 잘하는 이과 기숙사 특반 친구들은 대부분 성공을 해서 의대, 한의대, 약대를 갔다. 나는 고3 때 문과였지만 이과 기숙사 특반 친구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듣고는 했는데 그 중 한명은 재수 때 스타를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의대를 갔었다 ㅡㅡ; 그것도 06수능 수리 가형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97점을 받고,,,ㅡ.ㅡ,,, 그 친구는 천재라고 이미 우리 학교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학생이었다. 데스노트에 나오는 L과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학교 수업시간에도 잠을 자거나 판타지를 읽고 (그러고 보니 잘하는 얘들 왜 이렇게 판타지를 많이 읽는지 ㅡ.ㅡ) 문제를 풀 때는 거의 드러눕는 듯한 희한한 자세로 문제를 풀기로 유명했다. 마치 L이 추리를 할 때 항상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엄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있는 것처럼,,,-0-
그 친구는 판타지 광으로서 (판타지,,,ㅡ.ㅡ) 언어영역은 평가원이나 수능, 그리고 사설을 막론하고 항상 95점을 넘는 언어의 신이자 수학적 머리가 뛰어나서 수학의 신이기도 했다. 외국어는 언어랑 수학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미 고3 때도 의대를 갈 성적이 나왔으나 05수능에서 조금 삐끗해서 재수를 하여 다시 자기 점수를 찾고 의대를 갔다. 한의대와 서울대 공대를 동시에 합격한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비상하기로 유명한 친구였는데 역시 05수능에서 삐끗하다가 다시 06수능에서 자기 점수를 되찾고 성공했다. 그리고 약대를 간 친구 역시 머리가 좋다고 소문난 친구였는데 역시나 05수능에서 삐끗하고 다시 06수능에서 자기 점수를 되찾은 케이스였다.
이과 얘들 중 성공한 얘들을 보니까 모두 다 머리가 비상하고 노력을 좀 덜 하는 케이스였다. 정말 죽어라고 노려한 얘들이 성공한 케이스는 보지를 못했다. 현역 얘들 중에서도 의대를 2명 가는데 이 역시 원래 잘하는 후배들이었다. 1명은 독특하게 문제를 풀어서 이미 천재라고 인정을 받은 학생이었는데 인서울 의대인 한양대 의대를 가는 기염을 토했다. 판타지만 죽어라 읽다가 의대를 간 L스러운 그 친구처럼 이 후배도 06 수능 수리 가형 97점을 받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이런 결과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삼수를 해서 잘 할 수 있을지,,, 머리가 정말 L스럽지 않으면 명문대를 가는 것이 힘든 것인지 궁금하였지만 지금 우리 학교의 이때까지 결과로 봐서는 머리가 좋아야 대학을 잘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연한 소리다,,,-0- 머리가 좋으면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효율적이기 때문에 더 성적이 잘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한양대 법대에 등록을 하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는 곳을 등록하고 싶지 않았다. 어짜피 내가 목표로 하는 곳은 고려대였고 그곳이 아닌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았다,,, 배수진을 치기로 결심했다,,, 7차 마지막 수능,,, 제도가 바뀌지 전에 치러지는 시험이라서 무슨 \'100만 수험생설\'이 퍼진다느니, 시험이 매우 어려워진다니 하는 식으로 낭설이 떠돌았다,,, 나는 다 무시하고 대학등록조차 하지 않은 배짱을 선보였다. 반수를 해서 나름 성공을 거둔 것이 이번에는 망설임의 시간을 줄이는 데에 영향을 준 거 같았다.
학교를 찾아가서 교감 선생님을 뵙고 1년 동안 더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을 받았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다시 독학 삼수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학원을 다니면서 드는 1천만원이상의 비용 때문에 집안에 부담을 주기 싫었으며 또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믿었다. 무조건 재수이상을 하려면 학원으로 고고씽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학원을 다녀서 잘 하는 얘들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것도 \'원래 잘하다가 수능에서 잠깐 운이 안 좋아서 망했다가 다시 자기 점수를 되찾고 가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극소수의 승자 뒤에 가려진 너무나 많은 패자를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PMP를 사서 인강을 다운받아 그 안에 집어넣고 들으면서 복잡하게 공부를 하는 것에도 부정적이었다. 공부를 하는데 밥 세 끼 먹을 돈과 문제집 살 돈과 그리고 자기 자신의 머리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라는 무기만 있으면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생각하였다.
2월 달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열람실에 나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이 한두 분씩 찾아오곤 하셨다. 먼저 찾아온 선생님은 고2 때 부장선생님이셨던 K선생님이셨다. 문이과 문제 때문에 내가 너무 괴롭힌(?) 바로 그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이미 소문을 들으셨는지 나에게 와서 \"한양대 법대도 좋은 학교인데 왜 안 갔냐\"고 물으셨다. 나는 \"고려대 법대를 가고 싶어서,,,\"라고 말씀드렸다. 또 \"올해 마지막 수능이라서 잘 하는 얘들이 반수도 대거하고 많이 시험을 쳐서 위험할텐데 등록을 하고 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배수진을 쳤습니다.\"라고 대답을 드렸다. 그 다음에 그 선생님은 이런 저런 얘기 후에 열람실을 나가면서 우스갯소리로 \"고등학교 너무 오래 다닌다.\"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연수를 치면 고등학교를 5년째 다니는 것이었다,,,-0-
다른 날에는 예언가(?)로 유명하신 영어 담당 정크라테스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영어 선생님은 아까 위에서 언급한 \'그릇론\'의 창시자이시다. 영어 선생님은 해마다 수능이 끝나고 얘들이 모여서 \"야 나 재수할까? 재수하면 어디어디 갈 꺼 같은데.\"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돌아다니면서 들으시다가 창문을 열고 내지 바로 옆을 지나가시다가 \"네는 올해 대학을 가는게 현명하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시기로 유명했다. 20여년이 가깝게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보니까 입스타 (입으로만 나불대는 사람)를 구별하는 능력이 생기신 모양이었다.
그 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하느라 집중하는 사이 모르게 내 뒤에 오셔서 등을 탁 치셨다. 고개를 들어 뵈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그 때 그 선생님이 푸근하게 인상을 지으셨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무언의 격려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크라테스 선생님이 마치 \'네 그릇은 아직도 더 남아있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 날정크라테스 선생님으로부터 격려를 받으니까 올해에는 정말 내 꿈인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을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ㅋ
■ 너무 일찍 찾아온 슬럼프
그렇게 나는 삼수를 시작하였다, 방학 동안 많이 길렀던 머리를 다시 고등학생처럼 밀어버렸다. 머리가 짧으니까 불편한 것도 없고 잠 잘 때 베개랑 머리랑 바로 닿아서 잠도 잘 오는 느낌이 들었고 머리에 공부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나의 의지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공부는 반수 때처럼 낮과 오후에는 도서관, 그리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후배들과 같이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다. 일단 우선순위를 잡고 공부를 하기로 시작했는데 그 1순위는 바로 수학이었다. 수학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던 나날이 많았고 06수능에서도 백분위 90으로 겨우 2등급 끄트머리에 안착을 하는 결과가 나왔다.
수학 공부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중학교 수학부터 수학 10-가, 나도 공부를 하고 최종적으로 수1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산 것이 바로 중학교 개념원리 수학이었다. 중학교 수학을 제대로 몰라서 피 본 문제를 아직도 기억하는 04년, 그러니까 내가 고3 때 9월 16일 시행된 모의평가 수리 나형 13번 문제이다. 이 문제는 확률문제인데 중학교 개념인 \'원의 지름을 한 변으로 하여 나머지 한 점이 원주 위에 있을 경우 그 도형은 직각삼각형이 된다\'라는 것을 모르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만약 이런 문제가 수능에 나왔을 경우 이렇게 중학교 개념을 몰라서 틀리면 어찌될까\'하고 생각하였다. 내가 목표로 하는 고려대 법대는 수학 100점이 아니면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수학을 극복해야만 했다.
▲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중학교 개념원리 수학 시리즈, 중학교 1학년 7-나에서 공간도형 처럼 공간지각능력을 요구하는 직선과 평면의 위치관계 파트에서 고생을 하면서 수학 중에서 나 부분은 이과의 수학적 머리를 요구하는 파트들임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름하여 \'기.하.학\'이었다.
▲ 9-나 개념원리 수학의 한 부분,,, 기하학은 나의 수학적 머리의 한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그것이 선천적이든지 후천적이든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문제도 포기하지 않고 내 머리로 발상이 될 때까지 일주일이든 10일이든 기다리면서 끝끝내 풀어내는 경우가 많았고 끝끝내 못 풀었던 문제는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사진에 보이는 \'4차원 사고력\'이라고 체크한 문제가 바로 시간을 계속 끌다가 답지 보고 나서 내 머리로 도저히 발상이 불가능한 것을 인정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그 예이다. ㅡ.ㅡ;)
언어공부는 이 때 손을 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때 매일 10시에 일어나서 찌질대다가 늦게 도서관을 가느라 독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관이 참 무섭다고 수능이 끝난 후에 매일매일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잠이 많은 스타일인데 수능이 끝나고 계속 퍼지게 자다 보니까 그 습관을 쉽사리 고칠 수 없었다,,, 아침에 휴대폰으로 맞춘 모닝콜을 듣고 일어나려고 노력을 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일어나서 확인하면 모닝콜이 해지되어있던 걸로 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서 모닝콜을 끄고는 다시 잔 거 같았다.
수학공부는 중학교 개념원리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하였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외국어는 작년에 했던 EBS수능특강에 있는 단어나 구문, 그리고 내가 틀리고 정답체크를 안 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성문종합영어를 사서 독해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K교주님이 그렇게 사지말라고 하셨지만 맨투맨 기본영어로 효과를 나로서는 성문종합영어가 너무나 궁금하였다. 그래서 오르비에 성문종합영어에 대해서 여러 번 묻기도 하였고 최종적으로 구매를 하여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탐은 작년에 해오던 식으로 기본서를 계속 보는 식으로 공부를 해 나갔다.
모든 게 완벽하게 진행되었을 줄 알았건만,,, 2월 말에 지독한 감기에 걸려 버렸다,,, 반수할 때 열람실에게 인연이 되어서 만난 재수하는 후배 S랑 밤에 밖에서 얘기를 하다가 다음 날 심한 감기에 걸려 버린 것이다,,, 폐가 약하고 비염이 있는지라 감기에 한 번 걸리면 거의 3주 이상 가는 체질이었는데 정말 독하게 걸려 버리고 말았다. 평소에 나오는 맑은 콧물은 누런 아메바 같은 콧물이 되어서 나오곤 했다,,, 너무 괴로웠지만 감기에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옛날부터 많이 감기에 걸려보면서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매일매일 늦게 일어나다 보니 짜증이 많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짜증이 났던 나날의 연속이었던 삼수 초기 시절의 일기,,, 안 그래도 예민한 신경이었는데 독학으로 삼수를 바로 시작하면서 찾아온 외로움이나 안 좋은 몸 상태 등이 모두 다 겹쳐져서 생긴 일인 듯싶다,,,
도서관에는 매일 늦게 갔다,,, 항상 점심을 집에서 먹고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는 인터넷을 켜서 찌질 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10분만 하고 가자는 것은 1시간, 그리고 2시간이 되었다,,, (현역도 마찬가지고 재수이상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컴퓨터를 끊지 못하고 헛된 시간을 낭비하는 걸 알면서도 못 끊다면,,, 의지로 끊을 수 없다면 컴퓨터를 없애라, 그것이 답이다.) 도대체 이 시기에 내가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 (아마 공부에 갑작스러운 권태를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짜증이 나니까 모든 게 다 신경이 쓰였다. 3월이 되고 보니 학생실에도 학생들이 오는 4시 전에는 성인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독서대를 쓰면서 책을 보니까 앞 쪽 시야에 사람이 많이 보였다. 안 보려고 해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자리가 창문과 가까운 자리라서 그 자리 쪽에는 다른 사람들도 앉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수할 때는 못 느꼈는데 의자가 너무 딱딱해서 엉덩이가 아팠다.
특히 3월이 되자 내가 있던 학생실에 학생들이 많이 오게 되었는데 그네들이 하는 개념안드로메다스러운 행동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2학기에 그네들이 중간고사 치는 기간 딱 1번만 나랑 겹쳤지만 올해는 1학기 중간, 기말, 그리고 2학기 중간고사까지 나랑 겹쳐서 그네들을 학생실에게 계속 지켜봐야 할 판이었다. 성인실 이용을 생각해봤지만 성인실은 창문을 열지 않아 혼탁한 공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항상 창문 가까이에 앉아서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하곤 했는데 성인실은 위치한 쪽이 햇빛이 들어오는 쪽이라서 햇빛가리개를 치며 햇빛가리개를 치고 창문을 열자니 바람 때문에 햇빛가리개가 찰랑찰랑 거려서 거의 창문을 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칸막이었다,,,ㅡㅡ (이렇게 시작된 칸막이는 도서관에서 삼수를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어서 나의 성적을 올리는데에 일조하였다.) 어머니의 아이디어로 박스를 잘라서 칸막이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엉덩이가 아파서 방석을 가져가봤으나 엉덩이가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원인을 분석해보니까 의자가 90년 초의 것이라 매우 낮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열람실에서 쓰는 의자와 책상은 높이가 모두 높아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것은 낮아서 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높이를 맞춰야 엉덩이가 아프지 않았다. (반수 때는 왜 안 아팠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06수능 끝나고 요가를 2달 했었는데 그 때 삐뚤어진 골반을 교정하느라 좀 노력했는데 뭔가 그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이러지 않았나 싶다.) 그 때 마침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방에 깔아둔 깔개였다.
▲ 박스를 잘라서 만든 칸막이 앞면이다, 학생실에서 쓸 때 산만한 학생들이 계속 나를 쳐다보느라 거시기했다. 여름에 선풍기가 돌아가면 칸막이가 가벼워서 그런지 계속 날아갔다, ㅡㅡ; 그래서 선풍이 강도를 내리고 또 안 흔들리도록 필통과 책으로 어떻게 카바를 잘 해서 이용했다. (왼쪽 윗면에 보면 낙서가 있는데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에 앞에 앉은 어떤 여중학생이 \'열공 ㅋㅋㅋ\'라고 낙서를 해두었다.)
▲ 레어 아이템 풀세트 전개모습, 주방깔개는 3단으로 접어서 방석으로 이용했다. 푹신함과 더불어 의자의 높이까지 맞춰 주어서 90년대 낮은 나무의자에 앉는 불편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칸막이는 보시다시피 한쪽은 틔어놓고 정면과 다른 한쪽은 막게 해놨다. 틔어둔 쪽에는 내 가방과 책을 올려놔서 옆에 사람이 못 앉게 했다 ㅡㅡ; 아무래도 옆에 2cm차이로 또닥또딱 옆에 사람이 앉으니까 신경이 너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 열람실은 칸막이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도서관처럼 개방된 공간이라서 공부하기에는 정말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이렇게 도서관도 학교 열람실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공부에 임했다. 다가오는 시험 6월 1일 모의평가에서 470점대를 받아서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해야 했다.
낮에는 흐느적거렸지만 오후와 저녁에는 불타는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면서 3개월이 지났다,,, 이때는 하루에 순수하게 독학을 8~9시간 정도 하였다. (7월 대성 이후로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아무튼 몸이 좋아지면서 여름방학 때부터는 반수 때처럼 10시간 이상씩 하게 된다.) 수학은 중학교 수학을 다 끝냈고 이제 수 10-가,나 정석과 수1 정석을 같이 돌리고 있었다. 수1 정석은 6월 1일 모의평가 범위인 순열과 조합부분까지 완료하도록 보았고 메가스터디 800제 시리즈를 진도까지 풀었다. 기출문제는 이미 거의 외운 것이라서 잘 풀었는데 역시나 새로운 문제들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끙끙대면서 열심히 풀었다.
다른 파트들은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 수 있는 거 같았는데 순열과 조합에서는 머리의 한계로 인해 너무 고통스럽기만 하였다,,,(새터에 가서 다른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순열과 조합은 수학적 머리의 좋고 나쁨을 묻는 문제가 맞다고 하였다. 내 생각도 역시 이하동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수 10-가, 나였다. 특히나 수 10-가는 할 만했는데 수 10-나는 정말 환장할 것만 같았다,,, 도형은 나를 항상 괴롭혔다,,, 도저히 내 머리로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끙끙대면서 열심히 하였다.
■ 다시 찾아온 좌절의 시간들
6월 1일 모의평가를 치르게 되었다,,, 반수 때 학교 열람실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서 같이 수능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후배 S와 함께 둘이서 6월 1일 모의평가를 치르러 학교에 갔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 2006년 6월 모의평가 결과, 언어는 85점으로 1등급컷인 87점에 못 미쳤고 수학은 많이 찍어 71점을 받아서 안드로메다행 열차를 타게 된다. 외국어 영역은 87점을 받아서 1등급컷은 88점에 1점이 모자랐으며 사탐은 제일 약한 경제를 제외하고는 공부한 대로 나와 기분이 좋았다. 국사와 근현대사는 문제는 안 풀고 교과서만 줄창 읽었는데 역시나 지엽적으로 나왔으나 내가 많이 노력한만큼 또 많이 본데에서 나와서 성적이 정말 잘 나왔다. 백분위가 적절하게 나와서 흡족했지만 원점수 상으로는 고려대를 갈 수가 없어서 너무 실망스러웠다,,,
▲ 밥 먹을 때마다 본 수첩, 6월 모의평가 국사에서 여기에 적은 내용이 나와서 맞추었을 때 너무 기뻤다. 여기에다가 사탐에서 잘 안 외워지는 부분들과 맞춤법과 수학에서 잘 안 외워지는 개념, 그리고 행렬이나 극한에서 자주 나와서 외워야만 하는 반례 등 잡동사니를 많이 옮겨 적어서 밥 먹을 때마다 계속 봤다. 점심때에는 한문을 봤고 이 수첩은 저녁을 먹으면서 봤다. 크기가 작아서 밥 먹을 때 보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여기에 정리해 둔 내용들이 시험에 나왔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밥은 항상 야채와 나물을 그냥 주면 못 먹는 내가 밥과 함께 버무려져서는 먹을 수 있는 영양식단 김밥과 돌솥비빔밥 위주로 반수 때와 똑같이 먹었다. 그리고 인근에 맛있는 된장찌개 집도 알게 되어서 그 곳에서 자주 가게 된다. 된장찌개와 밥을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항상 입에 밥을 담고 먹으면서 눈과 의식은 수첩을 향했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총 2권을 작성하였다.
총점 422점을 받았다,,, 언수외 총점이 243점 밖에 되지 않았다,,, 고려대 법대를 가기 위해서 필요한 언수외 290점대는 나오지 않았다,,, 오르비에 들어가보니까 이번 시험이 정말 어렵다고 하였다. 성적표가 나올 때 보니까 오르비에서 추정하기를 434점이 1%커트라인이라고 했으니 시험이 어느 정도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시간을 허비하기는 했지만 순수하게 독학하는 시간이 많았고 정말 열심히 했건만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06수능과 대비하면 언어와 외국어는 떨어지고 대신 수학은 정체, 사탐은 엄청 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학결과를 보고 더 두려웠던 것은 일단 범위가 작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찍은 것이 무려 3개나 맞았기 때문에 전범위로 나오는 다음 시험에서 또 고3 9월 모의평가와 같이 49점을 받는 최악의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수학 실력이 하나도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봐야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지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3년차에 접어들면서 수많은 수학시험을 치렀는데도,,, 노력을 정말 할 만큼 했음에도 도대체 풀리지 않으니,,, 이 때 깨달은 것이 바로 수학적 머리의 존재였다. 우리 학교 이과에서 의치한약대를 간 얘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제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 문제가 풀리는 좋은 수학적 머리를 가지고 있는 점이었다. 다들 이과에서 소위 말하는 ‘본좌’로 불리는 학생들이었고 공간도형같이 수2에서 가장 힘겨운 파트도 머리로 순식간에 잘 풀어내는 괴물들이었다.
문과에서 수학을 잘 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봤을 때도 문제를 보는 순간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지 感이 온다고 했다. 더욱더 놀란 것은 이 때 같이 시험을 친 후배 S로부터 재수를 하는 자기 친구 K의 수학문제 푸는 것에 대해 듣고 나서였다. 후배 S의 친구 K는 이미 중학교 때부터 ‘수학본좌’로 유명했는데 문제를 보는 순간 어떻게 문제가 풀리지는 과정이 떠올라서 샤프를 짚고 손만 데어 과정만 쓰면 수학문제를 가볍게 풀 수 있다고 했다. (이 친구는 07년 경찰대 1차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엄청난 수학천재였다.)
나는 문제를 보는 순간 발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중에 풀고 보면 그 문제는 그 문제에 필요한 개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몰랐기 때문에 손을 데지 못하는 것이었다. 틀린 문제들을 주욱 살펴봤지만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일단 순열과 조합은 개념이 아닌 수학적 머리를 묻는 문제였고 나머지 문제들은 개념은 이해하고 있는데 접근, 즉 발상을 할 수 없어서 문제를 못 푼 것이었다. (수학은 개념이 30%, 발상이 70%이다.)
문제라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개념이라는 창을 들고 가자. 그런데 몬스터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발상’이라는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창으로 찍어도 문을 열리지 않는다. ‘발상’이라는 문은 바로 자신의 수학적 머리로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학 공부 방법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수학은 개념정리하면 하시면 수능에서 틀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이런 추상적인 얘기를 이때까지 계속 가슴에 품고 공부를 했던 나는 나의 수학적 머리를 기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게 되고 그 방법은 바로 ‘내 머리를 통해서 스스로 문제를 많이 풀어가면서 수학적 머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날 이후 곧바로 홀로서기 사이트에 가서 05학년도 월례고사, 사설모의고사, 전국연합, 평가원, 수능 수학시험이 모두 담겨 있는 38회분짜리 모음집을 사서 풀게 된다.
외국어는 지금하고 있는 성문종합영어를 중단하고 맨투맨 기본영어 1,2권을 다시 복습하고 나서 문법 문제집을 한 권 다루기로 했다. 독해를 하는 사고력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왔기 때문에 독해 문제집을 따로 하지는 않았고 문법 문제집을 하면서 독해도 같이 하려고 작정했다. 어휘부분도 더욱더 완벽하게 다지기 위해서 다시 능률 보카를 집어 들었다.
언어가 또 심각했다,,, 아침시간을 잠으로 보내니까 독서를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의지로 일어나서 일찍 가서 아침시간을 활용하고 점심 먹고 독서하는 것을 습관화 하도록 해야했다. (7월이 되어서 몸 상태가 좋아졌고 의지로 아침에 8시 30분에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태백산맥 10권, 신조협려 8권, 교양서적 여러 권 등을 읽게 된다.)
■ 06수능대비 42점 하락,,,
날씨가 점점 무더워 지고 있었다,,, 6월 모의평가가 끝나고 월드컵 시즌이 되었다. 나는 일부러 월드컵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한국인지라 한국경기가 있는 날은 꼬박꼬박 보게 되었다,,, 그 결과 그 날의 리듬이 다 깨져서 종일 조는 등 정신이 없었다,,, ㅡ.ㅡ 토고전은 학교에서 야자를 10시에 마쳐주고 학생들을 모두 보내주고 기숙사 얘들을 교실에 오게 해서 TV를 켜게 하여서 보게 하였다. 그래서 나도 10시에 야자가 끝나고는 집에 가서 토고전을 시청하였다, 이천수의 환상적인 프리킥이 터지자 우리 아파트 옆에 있는 우리 학교와 그리고 아파트 동네에서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대단한 환호성이 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ㅋ
그 다음 프랑스 전과 스위스 전이 있었는데 둘 다 새벽에 경기를 하였다, 새벽에 하는 거니까 잠을 자고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새벽 4시에 경기를 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 때 깨어 버렸다,,, ㅡㅡ 동생과 아버지가 경기를 보고 계셔서 나도 동참하여 경기를 보았다,,, -0- 프랑스 전 극적인 1:1 무승부, 그리고 스위스 전에서의 2:0 패까지 모든 경기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기를 보고 나서 2일 정도는 리듬이 다 깨져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나라가 16강에서 일찍 떨어져서 이후로 우리나라 경기를 보느라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없었던 것을 지금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ㅡ.ㅡ 죄송 -0-)
그렇게 월드컵이 끝나고 무더움의 절정이었던 7월 달이 다가왔다,,, 그리고 7월 11일 대성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 너무 괴로웠다,,, 수학이 도무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수학을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언수외 234점,,, 고려대는커녕 다시 한양대 법대도 갈 수 없는 점수였다,,, 사탐은 나름 선방을 했다. 3개를 다 1등급을 찍었다. 사회문화는 잘 나올 때는 잘 나오고 못 나올 때는 못 나오는 희한한 과목이라서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이상하게 이 때 7월 대성 경제랑 9월 경제를 잘 봤다, ㅡㅡ; 인생은 새옹지마~)
6월 1일 모의평가를 치른 후 물론 월드컵 기간에 좀 흔들리긴 했으나 그 결과가 너무 비참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이렇게 나오다니 말이다,,, 특히 수학에서 또 머리의 한계를 느꼈다,,, 정말 수학은 제 시간 안에 다 풀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 했다,,, 진짜 환장할 것만 같았다,,, 아직 많은 문제를 다뤄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수학적 머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미친듯이 문제를 풀어가면 머리가 트일 것이라고 믿었다. 남은 기간 열심히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항상 사설 꺼는 저런 점수를 맞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해도해도 사설은 뭔가 탐탁치 않았다,,, 틀린 것을 봐도 좀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았다. 그냥 계속 독서를 꾸준히 하기로 결심한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는 진짜 사설 언어랑은 이상하리라만큼 거리가 멀다.) 외국어는 듣기를 5개나 틀렸다, 안 그래도 아침에 매일 늦게 일어나느라 영어듣기를 매일 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그 때 듣기성우가 좀 이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말려서 너무 많이 틀렸다, 그래도 문법을 이제 서서히 다 맞아가고 있었고 독해에서 비끗하여 몇 개 틀렸다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았다.
독해는 이해를 못해서 틀리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자꾸 안 풀리는 것은 소설을 써서(마음대로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 틀리는 경우가 아주 소수 있었다. 고3 때는 그런 적이 많았었는데 이제 거의 없어졌다고 했지만 이번에 틀린 문제를 보니 그런 것이 1개 있었다. 내가 과외를 했던 후배의 말을 빌리자면 ‘글을 따라가야하는데 머리를 따라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애썼다. 06년 수능 449점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 점수 407점,,, 42점이나 떨어진 이 점수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막막했다,,, 하지만 공부 방법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나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머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날 학교 열람실에 와서 잠깐 머리를 식히러 밖에 나가서 벤치에 앉았다,,, 각오를 새로이 했다,,, 자꾸 성적이 왔다 갔다리 하는 것은 나의 실력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임을 인정하였다. 나의 머리를 보완하기 위하는 유일한 방법이 노력이라는 것밖에 없음을 알기에 열심히 하자고 다시 다짐했다,,,
■ 여름방학, 그 기나긴 사투
7월 달이 지나고 8월 달이 찾아왔다,,, 어느 덧 수능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3번 째 맞는 D-100일,,, 항상 느낌이 새로웠지만 마지노선인 삼수까지 하게 되니까 더욱더 감회가 새로웠다. 7월 달부터 몸이 좋아졌는지 정신이 각성됐는지 몰라도 아침에 의지로 꾸준히 8시 30분 정도에는 일어나게 되었다. 고1 때부터 걸린 불면증 때문에 주변이 조용해도 항상 잠드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많이 자지 않으면 도서관에 가서 몸이 피곤하여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충분히 잔만큼 도서관에서 가서 조는 일이 전혀 없었다. 풀집중력을 발휘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밥을 먹고 신문을 보고 영어듣기를 하고 10시 조금 지나서 도서관에 도착하고는 했다. 절대로 1학기 때처럼 도서관 가기 전에 컴퓨터를 켜지를 않았다. 이렇게 하니까 독서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반수 때처럼 1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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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64311 2
국어 백분위 33 수학 백분위 74 영어 3 한국지리 백분위 97 세계지리 백분위...
정말 생생한 수기!!
굿!! ㅠ,.ㅠ..ㅋㅋ벌써 1시간째읽는중~!~
수학 100점 극복 ㅊㅋ
분량초과로 글이 짤렸습니다. 수정이 안되네요. 게시판 버그인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서 봐 주세요.
지친다 ㅠㅠ
읽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쓰는데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재밌게 읽고 있어요^_^
정말 눈물날 정도네요..
대단하십니다 정말 ㅠ
중랑천 같아요...; 삼수 독학생으로 도서관 다니는데ㅠㅠ 완전 자극+_+
월~일까지 매일매일 가야겠어요ㅠㅠ;
혹시 지역이 영주인가요...?
맞는거 같기도 하구 아닌거 같기도 하구..
정말 열심히 하셨군요....
항상 항상 항상 감사 감사 감사 합니다 합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