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8-06-16 19: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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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같지만 형법상 죄가 아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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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같지만 형법상 죄가 아닌 것들


  살다 보면 화날 때가 있다. 운전하는데 누군가 끼어들 때, 말없이 나를 치고 사과없이 갈 때, 뭘 노려보냐며 취객이 쌍욕을 날릴 때 우리모두 참아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참지 못할 땐, 행동한다. 이 때도 기준은 있다. 경찰서 처벌받지 않는 정도로만 화풀이를 하고 싶다.


  뭐가 죄인지 대충은 안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만지면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쳐도 안 된다. 이건 다 안다. 그런데 길가다 떨어진 물건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인지는 의외로 모른다. 차 안에서 택시기사에게 쌍욕을 해도 처벌안받는다는 것도 의외로 모른다. 


  국가엔 형법이 필요하다. 형법은 어떤 행동을 처벌할지 기술한다. 그런데 우린 형법을 읽어보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죄가 안 된다고 믿는다. 근데 실상은 다르다. 당연히 죄가 될 것 같은 것도 안 되고, 안 될 것 같은 것도 된다.


  얼마 전 김군은 등록금을 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할머니에게 받은 돈을 술값으로 흥청망청했기 때문이다. 간혹 통장에 장학금 혹은 할머니에게 입금되는 때가 있어 연명했지만 이번엔 심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체크카드 내역을 보니 300만원이 입금되었다. 장학금인가? 할머니가 주신 돈인가? 들뜨는 마음에 인출하려 등록금에 충당했다. 김군은 행복했다. 경찰서 소환명령이 올 때까지는. 김군은 입금자를 확인했고 생면부지의 사람인 걸 알았다. 당장 부모에게 사정하여 300만원을 마련해 송금자에게 되갚았다.


  이윽고 출석. 경찰은 말했다. 당신은 횡령죄로 처벌받는다고. 김군은 날뛰었다. 멋대로 입금해놔서 쓴 것 뿐이고 이미 다 갚았는데 무슨 소리냐.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인데? 그러자 경찰은 말했다. 이 돈은 부산에 사는 여대생 이양이 부모님에게 송금할 돈을 착오로 잘못 송금한 돈이라고. 그러니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김군은 경찰은 말이 안통한다 생각했는지 검사에게 호소했다. 검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왜 누가 보내준 돈인지 확인도 안 하고 썼냐는 것. 김군은 평소 그렇게 돈이 들어온 사정이 있었기에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말했다. 


  결국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착오로 송금된 경우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 했다. 결국 김군은 횡령죄로 처벌받았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꿈인 김군에게 '횡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경력은 꽤나 뼈아플 것이다.


  죄가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이는 1차적으로 입법자(국회)가 결정하고 2차적으로 해석자(사법부)가 결정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해석이 들어가니 주관이다. 주관적이니 일관될리없다. 대법관들끼리도 죄가 되네 안 되네 다툰다. 운좋게 죄가 안된다는 법관이 더 많은 안 되는 것이고 나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애매한 경계에 있는 현실을 다루고자 한다. 어떠해야 한다기보다 어떠하다고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당신은 죄를 정말 안 짓고 살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보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나서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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