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꺼내는 '수능 언어' 대란
오르비에 들어오면, 나 할만 하고 나간다.
그래도 '댓글이 많은 글' 따위는 눈에 띄어 이슈를 어느정도는 알게 되는 편이다.
국어강사를 병신이라 욕하는 글,
그 글에 달린 수많은 공감글.
여기서 난 최근 이슈와는 별개로 근원적 질문을 하나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문학작품'은 수험 평가의 대상이 되는가?
난 이렇게 우스운 평가방식이 아직 존재하는 것이 놀랍다.
문학은 내 짧은 통찰력으로 정의한다면, 우리가 쓰는 일상언어를 다르게 전용하여 새 의미를 부여하고
이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명하는 예술이다.
그러니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따위의 시는,
그냥 보이는 꽃을 각각의 독자가 여러 상황에 맞게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는 장치를 만든다.
이게 예술이고
문학이다.
저 꽃을 보고 일상생활에 놓치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아주 평범한 철수군이나,
자신이 올라간 사이 누군가 자신을 위해 심어놓았을 마리아쥬를 상상할 영희양이나,
간절히 바란 나머지 내려갈 때(인생이 망해갈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을 떠올리게 되는 필부나,
모두 저마다의 세계로 작품을 끌어들여 문학을 소비하고 향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을 작가 의도대로 소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수능은,
저 시를 기계적인 틀에 갈아넣고
메인스트림의 해석론에 논거를 의탁하여
답안을 그 안으로 몰아넣는다.
해석의 다양성이 생명인 예술에
정답 이의제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면, 메인스트림의 해석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신경림이 자신의 시 '농무' 수능문제를 풀어 5문제 중 3개를 틀리든,
최승호(염상섭에서 수정)시인이 도통 문제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든 상관없다.
프랑스, 독일, 슬로베니아 어느 국가도 이런 식의 문학폭력을 자행하지 않는데
유단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이런 잔재가 남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거대 문단에 문제제기조차 하는 이가 없는 강사들은 더욱 놀랍다.
성추행도 쉬쉬하는 그들에게, 모든 예술이 '대중문화'가 되어 평가받는 시대에
아직도 '신춘문예', '계간지'라는 높은 평단을 쌓아 평가질하는 그들이 있는 한
이런 폭력서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런 문단폭력에 딱 한 번 균열이 난 적이 있었다.
2004수능 언어. '의원'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제였는데 '미궁의문'이냐 '실'이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정답은 '미궁의문'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듯 대다수 피폐한 군중들이 찍소리 못하던 사이,
한겨레 기자가 우연히 어느 교수의 문제제기 인터뷰를 따게 된다.
그 교수는 최권행. 서울대학교, 그것도 프랑스문학 교수였던 데다 제시 지문은 서양문학의 시초인 그리스로마신화였다.
제기했던 이유는 단촐하다. 문단의 폭력에 맞서거나 수능언어의 구조적 결함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딸이 문제를 풀었는데 틀려서 이해가 안 되자 문학과 교수인 아버지에게 물었는데 그 아버지가 풀어봤는데도
말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문제제기한 게 아니었고, 인터뷰 한 번 했을 뿐인데 당시 경직된 사회분위기에서
'서울대 문학 전공 교수'의 문제제기는 매우 많은 파급력을 냈다.
이를 보고 같은 문제의식을 느꼈던 나는 다음 카페를 만들었고 할 것도 없던 데다
학생운동이랍시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렸고 방송사 인터뷰도 했다.
어려서부터 독서가 좋았고 매우 부족한 글이었지만 국어경시대회, 전국백일장 등 빠지지 않고 수상한 내 입장에서 언어 문학 영역은 항상 나의 점수를 갉아먹었던 그 심정도 반영됐을 것이다.
결국 서울대 교수 덕에 이 문제는 수능 최초로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문제제기한 자가 일개 학생, 교사, 학원강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문단 주류의 교수가 (우연히) 의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당시 '수능언어 대란'이 기억나는 이유는 아직도 나는 이 발전한 세상에 저런 후진적 해석을 강요당하는 학생들의 현실과,거기 침묵하는 학교, 사교육계의 현실과, 여전히 강요하는 문학계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십수년이 흘러 문예지 등단, LEET 모의출제위원, 졸필로 책을 출간하게 된 지금 더 굳건하게 됐다.
신경림은 자신의 시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라는 것을
수능문제 답(2003)을 보고서야 "깨달아야 했다".
버스는 떠났다.
하지만 택시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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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택시는 남아있다.
그래서 Leet에 문학이 없죠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저도 잘 쓰고싶은데 뭐부터 하면 될까용...
남이 쓴 글 읽으면 됩니다 ㄹㅇ 책 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이야 가독성 ㅆㅅㅌ 시간 개빨리 지나가네
그래도 최소한 최근 수능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문학문제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가? 를 물어보고 있기 때문이죠. 그냥 제가 기출문제를 봐도 느껴지는 변화입니다. 글쓴분께서도 한번 확인해보고, 의견을 적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윗분 말이 맞는듯 요즘은 문학에서 글에 적힌 부분들 최대한 조심할려고 내용 일치랑 진짜 불가능한 해석만 틀렸는지 물어봄 기출 풀어보면 2010년 전이 심했었는듯
이 글 개소리라고 생각함.
누가 다양하게 해석하지 말라고 함?
말도 안되는 해석만 거르면 답이 나오는데.
미궁의 문 사태는 굉장히 이례적인 사태인데 그걸 근거로 들어서 수능 문학이 그런 양 호도하면 안 됨.
또 글 초반에
"자신의 작품을 작가 의도대로 소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문장과
"신경림은 자신의 시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라는 것을
수능문제 답(2003)을 보고서야 "깨달아야 했다"."
이 마지막 부분 문장은 서로 모순임.
신경림의 의도가 뭐가 중요함? 수능 출제한 사람이 그렇게 해석했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수험생들한테 물어본 건데.
"자신의 작품을 작가 의도대로 소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라는 문장은 하물며 작가도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는데, 교수들의 편협한 해석의 틀로 문학을 재단하는 게 문제라는 취지에서 쓴 문장이잖아요.
그걸 왜 마지막 문장이랑 묶어서 억지로 모순이라 만들고 비판거리를 '만들어내는'지 정말 이해가 안가네요.
개소리 ㅋ
독해능력 씹창나셨나
남의 독해능력 탓하고 싶으면 먼저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씨부리던가.
하...
마지막 문장은
신경림이 의도하지 않은 주제의식을 답 선지로 낸 걸 비판하는 뉘앙스를 가득 담고 있는데, 그걸 못 읽음?
근데 신경림이 의도하지 않은 주제의식이라 해도 문학의 특성 때문에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그 주제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초반 그 문장에서 제시한 거임.
그럼 신경림이 의도하지 않은 주제의식을 답 선지로 냈다고 해서 그걸 비판하면 안 되는데, 마지막 문장에선 그걸 비판하고 있잖아.
이게 어려워서 하나하나 설명해달라고 떼 쓰나.
개소리라니? 미쳤구나.
머리는 나쁘고 이해가 안 되니 그러는 거 이해가는데 글 반박이 아니라 이렇게 욕할 거면 면전에서 해. 나에게 직접 쪽지 보내기를.
할말만 하고 처나가신다면서 왜 키배뜨려고 하는지? 할말 다 하셨으면 나가세요ㅋ 첫 문장부터 구라를 치고 들어가네
걸레가 나불거리면 패야지. 내 앞에서 저 말 할 자신 있으면 쪽지 보내고, 함부로 욕하지 말거라.
아~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최근에는 문학에서 허용가능한 해석이면 옳게, 내용일치에서 완전 틀려버려서 헛소리일수밖에 없는것만 틀리게 출제되는데요..?
내가 이 말하고 싶었음 ㄹㅇ
좋은 글인데 수능 문학이 해석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 공감이 안 되네요ㅠ 2016학년도 9평 b형 34~38번에 나온 신석정 시인의 꽃덤불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메인스트림이 있음에도 '사랑에 대한 시'라고 보기를 줘 버렸죠. 그걸 보면서 문학의 다양성을 느꼈었는데.. 수능 문학은 '틀린 해석'을 찾는 시험이지 '메인스트림과 다른 해석'을 찾는 시험이 아니니까용
'틀린 해석'은 그 자체로 해석을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답 범위내의 해석틀 안에 가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에도 서울대 교수 자식이 틀려서 이의제기 했다면
비문학이 메인이 된 건 다행임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을 독립된 한 과목으로 만들고 문학사나 문예사조 관련 지식도 조금 더 자세히 묻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문학은 풀어보면 이게 문학적 소양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수학을 제치고 교과서가 의미 없는 영역 1위일듯?
예전엔 그랬는데 이젠 내용일치위주로 물어봄
일단 제 의견은 현행 국어 문학 문제는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 것이며 오답의 근거가 뚜렷해서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어떤 시험이든 묻고자 하는 바를 묻는 방식에는 장단이 존재합니다. 현행 방식의 단점을 말씀하셨는데, 일부 공감은 갑니다.
다만 이 글이 잘못된 바는 그걸 어떻게 수정할지에 대한 부분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서 문학을 뺄수도 없는 노릇이죠?
본인이 생각하기엔 문학 출제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63년에 사망한 엽상섭이 수능을 풀어봤다구요? 초기 수능이 90년대 아닌가요?
제가 느끼기엔 이 글을 쓰신 분은 ‘국어’ 시험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신 것 같고.
댓글 달아주신 준들의 상당수는 국어’시험’이라는 점을 중요시하는 것 같네요.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혹시나 프랑스처럼 주관식으로 시험을 보게 된다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그래서 보기지문 주어지고
그럼 보기의 관점대로 해석하면 어떨까? 라고 묻잖아요
전혀 공감이 안되네요. '국어 문학 교육이 틀린거다' 라는건 일부 공감할 수 있지만, 전 수능 국어의 문학 파트가 해석의 다양성과 애초에 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원준 강사님도 교재에 문학 교육을 국어 교육에 억지로 포함시키는 것이 문학 교육의 최대한의 발전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수능 국어문학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세요" 라고 하셨고 수업에서도 수능 국어는 예술의 관점으로 보는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수능은 감상능력을 평가하고 싶은게 아니고 언어적 민감성이나 독해력 등을 물어보는게
아닐까요?
과몰입 ㄴ
확실한건 오르비에서
문학 안나오고 비문학만 나왔으면 좋겠다.
문학은 쉽게내고 비문학은 어렵게 냈으면 좋겠다. 라는 사람들은 실용성, 효용성까지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고
비문학 쉽고 문학만 어렵게 냈으면 좋겠다.
비문학 안내고 문학만 나왔으면 좋겠다. 라는 사람들은 그냥 비문학은 딱딱하고 재미없고 문학은 재밌다는 이유 하나로 편식하면서 공부하고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뿐이었음.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취지를 생각할때 국어영역에 문학 문제를 굳이 출제해야하는가? 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아무리 정교한 문학 문제를 내더라도 문학의 특성상 해석이 갈릴 여지가 조금은 있을텐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출제할만 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수능 문학의 상당부분이 패턴화 된지 오래됐습니다. 학생들의 문학적 소양은 타임어택이 심한 수능 보다는 학교 수업에서 기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문학은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수능국어에서 문학을 출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현수능체제가 문학 문제의 해석의 허용가능성을 넓히고 주 문제들을 일치/불일치로 내면서 학생들의 정보처리/논리성을 평가하고 있지만 굳이 문학영역보다 독서영역이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데 문학영역을 수능에서 출제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문학을 수능에 출제함으로써 현재의 문학수업이 문학의 미를 못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비문학만 풀면 머리가 이상해질듯 ㅠ
작년인가 팡일쌤 훈도에서 들은 것 같은데
이중섭 그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