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을 마감하고...
초등학교 때 부터 난 항상 추상적이었다.
근거 없는 판타지물과 액션에 취해 살기도 했고 한 때는 나루토에 빠져 휴우가 네지 코스튬을 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면 썩 나쁜 기억은 아니다. 모두 추억이다. 외고 입시까지 달렸던 험난한 길도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험난한 억새 숲을 가로질러 헤라의 황금사과나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 용을 잠들게 하고 베어 문 그 사과가 결국 독이 든 사과였을 뿐이다.
나는 추상이란 말을 좋아했다.
그와 반대되는 현실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상을 바랄 뿐인 어린 씨앗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세계로 가길 원했고 그 결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디지몬이 되었다.
그러다 결국 현실에 있는 나를 목도할 때면 생각하던 세상과의 괴리로 인한 처참함 때문에 도무지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없었다.
그렇게 추상적이었던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 현실적인 아이로 바뀌었다.
내 마음 속 유토피아는 사라진지 오래.
합리적인 인간으로 변할수록. 이성적으로 변할수록. 감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사고를 진행시킬 수록.
나는 조금씩 여리디 여린 하나의 어린 씨앗에서 변질되고 오염된 싹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어릴 적 굉장히 소심하고 해야 할 말, 쓴소리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어느새 내가 하고싶은 말 다하고 합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됬다.
물론 그로 인한 폐해는 3년간 여실히 겪었다.
조용히 넘어갈 줄도 알아야 했지만 끊임없는 지적질.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보이는 단점만, 약점만, 결점만 귀가 닳도록, 입이 돓도록, 화가나서 절교할 정도로...
3년 동안 사귄 친구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그렇게 살아왔다.
결국 일은 터졌다.
매 수업시간마다 수업은 안하고 썰렁한 농담 따먹기나 하고 학생 때리기를 일삼는 선생.
분명 체벌은 금지되었다는 생각과 선생이 학생을 강압적으로 누르는 분위기의 수업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 날 수업 시작하기 전 별 생각 없이 여느 때처럼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쓰레기)이 들어온 뒤 종이 치기 시작했고 책이 여러겹 싸여있는 바 서랍속에 넣고 수학 책을 덮으려 했다.
그 순간 내 앞까지 다가와 수학 책을 들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책이 절반가량 찢어졌다.
기분도 상하고 짜증나는 투로 막 넣으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책을 다시 책상 서랍 속에 넣으려고 했는데 넣다보니 빈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상위 한 켠에 놔두고 수업을 듣는데 수학 책 또 책상위에 있다고 나한테 와서 책을 들고 던져버렸다.
어이없고 화나서 꼬나봤다. 그 이후는 당연히 알만한 일이다. 쓰레기는 왈왈 짖었고 쓰레기는 내 명치 주위를 계속해서 가격했고 쓰레기는 내 정강이를 깠다. 맞으면서도 때리고 싶어 죽겠는데 나의 물러설 수 없는 신념은 그걸 거부했다. 철저한 유교사상 하에 커온 나는 늙은이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버린 것이다.
그렇게 복도로 쫒겨났고 나는 맞은 부분이 아파 속이 쓰라려 피가 고인 침을 뱉었다.
쓰레기는 침 뱉는 나를 보고 복도로 나와 진학실까지 머리를 잡고 끌고 같고 억지로 앉히고 쪼인트를 까댔다.
세상 더럽고 뭐같아서 그냥 학교를 나와버렸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고 우리 가족은 학교측과 합의를 봤다.
그 선생은 그 이후 나한테 뭐라 한마디도 못했다.
솔직히 그 선생은 나한테 한주먹거리도 안되게 생겼다.
키 179에 몸무게가 81~82kg 나가는 나한테는 한 170이나 되보이는 찌끄레기 선생은 뭣도 아녀보였다.
병원가서 갈비뼈가 좀 부러지고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하극상 같은건 개무시하고 그냥 학교 가면 선생 열나게 때릴 생각만 했다.
진짜 개 쪽 주고 싶었다. 그 인간 머리를 내 발로 지근지근 밟고 빠따로 때리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나보다 어른이니깐 물론 하는 짓은 망나니만 못했지만...
퇴원한 후 나는 초연해졌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생들은 그냥 진부한 선생들일 뿐이라 생각했고 일일이 대꾸하려고 따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3학년이 끝나갔고 수능을 봤다. 논술 우선선발 1 1 1을 맞춰 고대나 한양대를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건 2 1 1 이었다.
수능 당일에 수리 가형을 보고 나름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 문제지로 채점할 땐 88점이었고 만족했다. 최소 2등급이니
그런데 가채점 용지로 채점하니 64점이었다. 16번부터 21번까지 가채점 용지에는 한 줄로 되어있었다.
평소 한 문제 풀고 마킹하는 습관때문인지 한 문제 풀고 가채점 용지 적고 그랬다.
별 생각없이 15번 답을 16번에 한 번 더 썼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니 가채점용지 칸이 부족해 옆에다가 하나를 더 썻다.
그런데 시간이 2분 남았을 때쯤 아무 생각 없이 마킹을 하다보니 밀린 줄도 몰랐고 결국 객관식 16번부터 21번까지는 하나도 안 겹치고 싹 틀렸다. 마지막 21번 번호를 보지도 못했다.
허탈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시험 당시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시험 끝나고 머리속에 맴돌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염없이 울고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초탈한 나는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내년에는 부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왕 이렇게 된거 현역 때 노려보지도 못했던 서울대를 가고자 한다. 과탐 선택 때문에 못갔던 서울대를 내년에는 가고 말겠다.
이번 입시안을 보니 내신이 쓰레기인 나에게는 그나마 정시로 뚫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설기항 뚫을 정도 점수되면 아마 가군은 당연히 어딘가 의대를 쓰고 있겠지만...
나는 다짐한다.
내년에 이 날의 나는 근본이 있는 사람이 될것임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마이크로 소프트 하게
-
불법다운로드 ㅈㅅ
-
(컨셉에맞게 반말쓸게요) 수험생할 뒤질맛이지? 진짜 제대로 다시하니까 이 틀딱은...
-
도대체 뭐지? 허언이었나요? 제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들어가서 공시준비중인데...
-
학벌이란. 14
-
귀천. 7
띵곡 듣고 가세요 참고로 전 엠맥빠입니다
-
공간벡터(혹은 기하 과목 내용)수능,평가원 기출문제를 풀수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갈릴듯
-
블랙펜서 5
-
그러니 xdk좀 주세요
-
대학서열 8
대학앉아열
-
스키장에서 썰 5
매 탔음
-
ㄴ천덕 0
꾸러기임 ㅎㅎ
-
설 날이 얼마 안 남아서
-
ㅑㅗㅏㅣㅡ
-
고민은 4
'가다'임
-
김씨끼리 결혼하면 11
동성애임
-
고 1
도리
-
카키색
-
이상씨는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죠
-
명작 복습 15
예전에 모아둔건데 지금은 추가돼서 더 많을거에요 1. 160102 사슴이 눈이...
-
수시는 ‘학종이’라서 접어야함.
-
H2 4
암소
-
O2 3
죽은소
-
자금성
-
오팔 6
사십
-
오 12
목
-
개야하니까
-
암소 4
수소 산소 죽은소
-
왜싸움 한의사 =한 의사 =1의사 =의사
-
친목이 있으면 6
맞은목도 있나...
-
공산당
-
이의 있습니다@!!!!!!!!!! 이화여대 의대생 있습니다 엌ㅋㅋㅋㅋ
-
제 개그 모음집 12
예전에 모아둔건데 지금은 추가돼서 더 많을거에요 1. 160102 사슴이 눈이...
-
원순열.jpg 4
정직한 제목 정직한 사진
-
지오디 베이비복스 에스이에스 핑클 에이치오티 젝스키스 솔리드 ...또 누구 있지?
-
자연로그의 반대는? 10
ln0
-
지금당장 인낭글들어가서 드립글정독하시길바랍니다.정 . 독 이요...
-
가사에 답이 있을 수도 있어요! 1)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너를 사랑하면...
-
시발점 노베전용이라하길래 미2완강했는데 어우야 노베전용이라는 느낌보다 베이스는...
-
저 사실 노잼임 11
ㅇㄱㄹㅇ
-
저 진짜 이런말하기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진실을 말할게요 저 실은... 드립...
-
여자인 친구가없으면.... 이성을 잃은거거든요 엌ㅋㅋㅋㅋ 잘게요.
-
사슴이 신나면? 3
에헤라deer~
-
해피해서
-
선생님이 이름이 지연? 그분 학원오기만하면 화부터내심 늘 의아했었는데 알고보니 그분...
-
둠둠둠 탁@ 9
여기 붙어라- 모두모여라- WE GON’DRIP LIKE 인나아아아아아 아앙
-
이슬람은 0
아침의 상징이다.
-
무한리필
-
집중!!@ 호우!!@@!@@ 엌ㅋㅋㅋㅋ 으킼ㅋㅋ
-
악보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엌ㅋㅋㅋ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