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강대 저녁 [874505] · MS 2019 · 쪽지

2020-10-13 01:04:02
조회수 11,332

안녕하세요. (장문)

게시글 주소: https://susiapply.orbi.kr/00032629365

오랜만입니다. 1년 주기로 물갈이 되는 입시 판에서 이미 제 앞에 있던 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한, 저를 모르고 저를 궁금하지 않아 하실 분이 많겠지만, 저는 그래도 글을 써보고 싶어서 왔어요.

  

간단하게 말해서 2020 수능 수능후기? 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20 수능 이후 오르비는 가끔 보긴 했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처음이네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는 목표한 대학에 진학에 실패했고 다른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족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다음 주가 중간고사라 공부하기 싫어서 오르비 들어온 건 절대 아닙니다.

  

1.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

  

재수를 할 때, 밥 먹고 오르비를 보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밥 먹고 산책하거나 밥을 먹지 않고 산책하거나 혹은 오르비를 보거나. 오르비를 보는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입시정보죠. 그리고 저같이 홀로 공부하던 사람에게 커뮤니티는 약간이나마 위안이 되기 마련이었죠.

  

어느 날, 메인 글에 OO월 OO일 저녁 이렇게 쓰인 글을 보게 되었어요. 글 내용은 강남대성에서 자기가 먹은 밥을 매일 촬영해서 올리는 글 이었죠. 처음에 보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쓸데없고 부지런하다. 되게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저도 그러한 관심이 필요했을지 모르죠. 그렇게 저는 매일 저녁마다 그 게시글을 찾아보았죠. ‘이 사람도 매일매일 공부하고, 이렇게 성취감을 얻는구나. 부럽다.’ 공부에 대해서 성취감을 얻지 못한지도 꽤 되었고, 지친 몸과 마음에는 공부에 대한 동기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인 상태에서 다시금 공부를 열심히 할 동기를 얻게 된 글이 바로 ‘강대저녁 글’ 이였죠. 

  

어느덧 수능 날이 되었고, 수능을 치렀습니다. 19 수능을 보고 인지부조화가 왔었죠. 나의 지난 1년과 그 전의 고등학교 기간은 어디로 간 걸까? 왜 점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제가 좋아하던 슬램덩크 만화에 나온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딱 저를 보고 하는 말이었죠. 쌓아올린 기본기는 모래성에 불과했고, 응용문제는 쳐다보지 못한, 1년의 세월이 무의미해진 시험 이였어요. 

  

19 수능이 끝나고 나선 현실감 없이 살았어요. 매일 밤 밤을 새며 PC방도 가고, 의미 없이 새벽의 도시를 걸어 다니며, 무얼 하지 않아도 뜬눈으로 밤을 보냈죠. 영혼 없는 몸처럼, 살아있는 시체였죠.

  

그 후 저는 삼수 준비를 했어요. 사실 준비랄 것도 없이 그냥 학원을 등록했죠. 19 수능을 보기 전에 불안감이 컸지만, 기대감이 그만큼 컸기에, 삼수를 할 생각은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내가 삼수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구요. 

  

그렇게 전 삼수를 강남대성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150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를 지워가며 공부했어요. 첫날에 급식을 먹으러 갔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밥을 기다리며 줄을 서는걸 보니 숨이 막히더라구요. 

  

이러한 생각 속에 파묻혀 학원을 다닐 때, 생각난 건 저 이전에 ‘강대저녁’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시는 분이 생각나더라구요. 현재는 송도 학식? 으로 알고 있는데 활동은 안하시는 걸로 알아요. 여하튼, 저도 매일 저녁 저녁상을 찍어서 올리기로 했어요.

  

내가 수능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건 1년짜리 목표였기에 매일 매일을 보낼 목표를 잡고 싶었죠. 공부로 목표를 잡긴 싫었구요 ㅎㅎ; 그래서 하루의 목표는 ‘조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저녁을 먹고, 집에 갈 때 사진을 올리기’ 로 잡고 매일을 공부 했던 것 같아요.

  

2. 수능을 향해 달려가면서

  

사실 저는 공부를 잘하진 못했어요. 게다가 옆에는 저보다 더 공부 잘하고 어린 친구들이 많았죠. 이런 사실을 항상 되뇌면서 저를 채찍질 하면서 공부했는데 돌이켜 보면 후회를 하곤 해요. 왜 나를 좀 더 따듯하게 안아주지 않았을까. 

  

요즘 가짜사나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고 있고, 그중에 가장 중요한? 말의 깊이가 깊었다고 생각되는 말은 ‘멘탈이 육체를 좌지우지한다.’ 라는 말 이였어요. 저는 멘탈이 좋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마치 코너로 몰아놓고 난타를 하는 권투선수처럼 공부를 했거든요. 장기적인 레이스에선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전 그런 생각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이러다 보니 6월 모의고사까지는 어찌어찌 견뎠지만 7~8월이 되니 몸이 못 버티더라구요. 그때부터 조금씩 무너졌던 것 같아요. 당시 제 마인드는 배수의 진을 쳤던 한신이라 생각을 했는데, 저는 한신 같은 능력이 부족했죠. 

  

어느 날, 아파서 학원에 늦게 가게 된 날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눈물을 훔친 적이 있어요. 길에는 나처럼 젊고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이 과잠을 입고 학교에 가는데, 나는 이 젊음의 2년을 어디에 날려버리고 사는가? 이런 생각이 좀 들더라구요. 눈물을 참기 힘들어서 지하철 화장실에 가서 닦고, 독기를 품고 학원에 돌아갔던 날이 기억나네요.

  

수능이 다가올수록 전 힘듦보다 빛을 보려 노력했어요. ‘결과가 어떠하든 난 수능을 잘 볼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 암시하고, 처음으로 수능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희열을 마지막 동기부여로 공부를 했어요. 고3 때는 부족한 실력에 원하는 목표를 얻으려면 재수를 해야 함을 수능을 보기 전부터 생각했고, 재수를 할 때는 이미 불안감속에 파묻힌 채로 수능을 치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희열이라는 감정은 3년 만에 처음 느끼는 감정 이였죠.

  

1교시 국어를 풀 때 저는 패닉 상태였어요. 고3 수능 때는 국어는 자신 있다는 마인드로 수능을 풀었고 1~2등급의 딱 점수 컷에 걸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재수 때는 국어를 풀 때 어려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그 때가 국어 1등급이 85점이였죠. 집에 가면서 채점을 했는데 91점인걸 알게 되고 난 삼수를 해야 하는구나 눈물을 흘렸는데 학원 선생님이 ‘너 1등급이야’ 라고 하셨던 게 생각이 나네요. 20 수능 국어는 조금 다른 느낌 이였어요. 6월, 9월 모두 한 번도 어렵다 느끼지 못한 국어에서 자꾸 점수가 날아가다 보니 국어에 자신감이 부족하더라구요. 저는 6, 9월 모의고사, 사설 모의 고사 등등의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지난 시험에 대한 기억을 털어내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연습을 많이 했는데 그날따라 그게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1교시에 국어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로 2교시 수학을 풀었죠. 머릿속에는 저한테 수학을 가르쳐 주시던 네 분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OO아 내가 그리 풀라 했나? 앙?’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2교시는 끝나갔고 답지를 제출을 한 시점에 한 가지 깨달았죠. 한 문제를 잘못 푼 게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더라구요. 21번 그 놈. 저는 진짜 바로 패닉에 빠졌어요. 눈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밥은 콧구멍에 쑤셔 넣기 시작했죠. 솔직히 고3, 재수 때의 수능 날은 기억에 남는데 삼수 때의 수능 날은 머릿속에 기억도 안나요. 좌 뇌는 문제를 잘못 풀었다는 생각에 패닉, 우뇌는 끝나고 난 해방이라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핑 돌아 약에 취한 듯이 상태에 패닉, 국어, 수학 보고 멘탈이 나가서 패닉.

  

밥을 먹고 영어 시간에 충분한 수면을 하고 탐구로 넘어갔어요. 한국사는 가벼운 마인드로 풀고, 과탐 두 과목에 대해 빠르게 개념정리를 시작했죠. 스트레칭도 하고, 시험관님께 말씀드리고 물도 한 잔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그런 다음엔 과학 탐구가 시작되었죠. 물리도 평소에 자주 실수를 많이 해서 정말 제대로, 한 번만 이라도 내 실력으로 제대로 풀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에 잘 나가지 않던 교회 생각이 나면서 두 손을 모으게 되더라구요. 여러분도 평소에 다니던 종교모임이 있다면, 수능이 끝날 때 까진 다니는 걸 추천할게요.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줄 때가 있거든요. 여하튼, 물리도 정신없이 풀고, 2탐구 과목도 정신없이 풀었죠. 

  

시험을 다 치루고, 전자기기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후에 시험장에서 나왔어요. 삼수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한 명 있기에 같이 집까지 걸어갔죠. 집까지는 1시간 반 넘게 걸리는데. 남자 둘이서 서로 고생했다면서 위로하면서 집까지 걸어갔네요. 그 날의 어두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으로 핸드폰에 남아있네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날씨가 쌀쌀하면 피부가 먼저 느껴요. 수능이 나를 기다린다. 그래서 오르비를 온 이유도 적지 않아 있네요.

  

3. 지금의 생활

  

목표한 대학은 넣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다음, 차선의 대학을 지원했어요. 추합권이라 믿기로 하고 눈 딱 감고 넣었는데 눈 딱 감은 채로 떨어졌죠. 그리고 현재 다니는 대학에 붙어서 다니게 되었네요.

  

사실 목표한 대학이 아니라 절망에 빠져 살았죠. 어쩌면 삼수 생활 할 때보다 더욱 더 저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조소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아 왔어요. 지난 1학기는. 

  

이런 생각이 너무 커져서 진짜 이러다 내가 돌아올 수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 무너지겠구나 해서 일어나서 걷기로 했죠. 그러나 걸음이 살짝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여차여차 좋은 길로 다시 돌아왔어요.

  

위에 적어놓은 다른 곳이라 칭한 곳은 노량진 대성학원 이였어요. 반수반을 등록을 하고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해보자, 너도 여기서 그만두면 너한테 패배한 것이다. 평생 자신을 무시하고, 저주하면서 살거야? 이런 생각에 파묻혀서 홧김에 등록을 했죠. 제 기억으론 금요일 이였을 거예요. 지금 다니는 대학 동기들을 만나고, 금요일 6시 노량진으로 향했는데, 노을이 참 아름답더라구요. 자주 왔던 노량진이 이렇게 노을이 이쁜지 전 처음 알았어요. 짧은 감상이 끝나고 발걸음을 학원으로 옮겼죠. 반수반 OT를 듣는데 앞으로 반수생들에게 펼쳐질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이 하시더라구요. ‘너흰 이제 자유가 아니다. 너희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해본 놈들이라 안다.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너희가 이겨내야 한다.’ 이런 말씀으로 기억해요. 저는 이야기를 듣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어 졌어요. 1500명이 공부하는 강남대성 첫 날 식당에서 느낀 느낌이 다시 절 옭아매더라고요. 머릿속으론 넌 반수를 해서 꼭 목표 대학을 가야한다 생각을 했지만, 본능이 학원 접수처로 가서 반수반 취소를 하더라구요. 그날 노량진 대성 몇 층인지도 기억은 안 나는데 화장실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엄마 미안, 나 더 이상 못 할 것 같아. 반수반 취소했어. 미안해. 잡에 가서 보자. 사랑합니다.” 이렇게 전화를 통보하듯이 걸고 버스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돌아갔네요.

그날 밤 어머니는 제 방에 찾아와서 제 손을 잡아 주시더라구요. 
 “고생했다. 엄마도 사실 네가 한 번 더 수능을 보겠다 했을 때, 걱정 반 기대 반 이였다. 근데, 오늘 너 전화 받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아들 정말 고생 많았고, 사랑한다.” 

  

그 때 이후로 지금 다니는 대학에 열심히 다니기로 마음을 먹고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와의 대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을 이제 놓아주고 용서해주기로 마음을 먹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거든요. 지난날의 자기혐오를 털어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에 대해서 좀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 이런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저 당시의 저는 이런 생각이 자기합리화로 치부하고 나약한 생각, ‘난 역시 나약한 놈이야’ 하면서 자신을 저주하기 바빴지만, 이젠 반대로 포기라는 용기를 낸 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앞으로 아름다운 날을 만들 나를 대견히 여기면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또 동기, 선배들도 너무 좋은 사람이 많아서 대학 다니기로 한 것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 일은 없지만 더 좋은 대학을 갔더라면 이 사람들을 놓쳤을 것이고, 반수에 실패 했다면 이 좋은 사람들을 내가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로 살아갔을 거라 생각이 드네요. 또 이젠 더 이상 학벌로 아쉬운 건 없네요. 사실 오르비에서나, 혹은 저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 지금 다니는 대학을 좋지 않게 평가할지는 몰라도, 충분히 좋은 대학이라는 것을 알기에 만족하면서 다니려고 합니다. 고등학교때 친구들도 몇 명 있어서 나름 좋구요. 그냥 집에서 학교가 먼 것 그게 좀 싫다? 이런게 있네요. 


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글재주가 없어서

  

 


 

두서없이 긴 글이고 그냥 써보고 싶어서 쓴 글이네요. 저라면 이 글 안 읽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수험생 여러분, 여러분은 소중한 존재이고 멋진 사람들이에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됩니다. 또,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다고 해서 패배자가 아니에요. 학벌에 연연해 자신을 파괴했던 저의 세월이 패배자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잖은 관심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아워홈 영양사님, 저 갈 때 마다 챙겨주셨는데 원래 마지막 날에 박카스 같은거 한 박스 사서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 날 급식이 없다고 못 드렸네요... 저도 어느새 밥 이쁘게 담아서 이쁘게 찍으려고 노력했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