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랏멍뭉이 [503209]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20-11-18 0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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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전과 후 서울대 합격 수기 2-2. 커리큘럼 : 거시적인 관점 - 어떤 공부를 어떤 시기에 했나,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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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겨우 마감시간을 지켰네요

이번 화로 이제 입시의 디테일을 제외한, 굵직한 얘기들은 다 끝납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잘 봐주세요!




1. -6월 모의고사(2016. 2 - 2016. 6)


2월 말 삼수의 시작은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왔었어요. 학교를 자퇴하고 받았던 환급금은 진작에 바닥이 났고, 부모님도 삼수 비용을 지원해주실 형편이 안 됐었습니다. 전과 전에 과외를 해 번 돈이 있었고 이후에도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조금씩 돈을 벌었지만(2015. 11-2016. 2),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통장 잔고가 밑바닥을 보일 때쯤 과외를 계속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심지어 여기서 학생을 어찌저찌 더 구한다고 해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까 싶어 절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누나한테 톡이 왔습니다.


통장에 돈이 입금된 것을 보고 좀 울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왜 삼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맞지, 나에게 공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택한 수단이었지, 하고 그 때 내 처지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픈 나, 이 방법 말고는 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실상의 수단이 없는 나, 운명의 장난같이 재수에 실패한 나와 10분 더 공부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나,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 일을 견뎌내는 것을 하루 하루의 승리로 삼는 나. 모두 나였고, 조금 더 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좀 단단해진 상태에서, 다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방에 있는 수의대에 다니기에는 건강이 걸렸고, 건국대를 목표로 삼기엔 학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화1의 정량적인 부분에서 출제되는 킬러를 내가 과연 정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1년의 시간도 있으니, 나머지 부분의 베이스를 보완하면 2과목에 도전해 서울대를 목표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세웠고, 물/화/생/지 중에서 당시 제가 보기에 그나마 과학적 직관보다 암기에 의존할 수 있는 지2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결심 이후 내용적인 부분에서 제가 주력했던 것은 생1 기틀을 다시 다지고, 지2 개념을 학습하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지2의 경우, 예상했던 대로 내용이 많은 과목이었고, 적어도 6월까지 기본적인 개념에서 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강을 열심히 듣고 체화를 하려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 저에게 효과적이었던 건 설명을 통해 제가 얼만큼 아는지 확인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대단원의 한 중단원, 그리고 중단원에서 갈래로 뻗어나가는 소단원들과 그 핵심 개념어를 써놓고, 개념어를 보며 생각나는 개념들을 설명해보고, 녹음한 내 설명을 다시 들으며 명백히 보이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을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다시 설명했습니다. 한 가지 힘주어 얘기하고 싶은 건 지2의 경우 기압경도력 등 어느 정도 정량적인 계산이 필요한 개념이 있었는데, 이러한 개념의 경우 이해와 암기를 모두 탁월히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공식을 직접 유도해보며 이해한 후 이를 기반으로 암기하는 식의 공부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개념을 숙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만들어 준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1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했지만, 유전 부분의 문제를 푸는 것은 개념의 이해와는 또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에 강사 교재의 자체 문제를 열심히 풀었던 것 같습니다. 유전 문제는 케이스가 너무 많았으므로, 각 문제의 특수한 상황에 천착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나뉘어지는 케이스에 따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행동 중심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몇 가지 케이스를 나누어 케이스 별로 대원칙, 그리고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과목의 학습이나, 과목별 밸런스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먼저 국어/영어의 경우에는 전반적인 감을 유지하는 부분에 있어 필수적으로 문제풀이와 피드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틀렸는지 / 잘못했다면 어떻게 잘못했는지를 메모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행동이나 사고 과정을 찾는 것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가령 간단하게는 <보기> 문제에서 지문의 근거를 무시하고 뇌피셜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이런 경우 저는 <보기> 문제가 나오면 결벽적으로 직/간접적 근거를 어떻게든 지문에 표시하고 이를 선지와 화살표로 연결하는 연습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다뤄야 할 양이 방대하거나 범위가 없는 과목의 경우 이러한 행동 방면의 정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의 긴장감은 인간의 무의식까지 파고드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면 이를 카운터할 수 있는 것도 지식 자체보다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절대적인 지식도 중요합니다만, 그 지식을 쏟아내기 위해 온전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일종의 방패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밸런스의 경우는, 어찌됐든 특정 과목에 매몰돼 나머지 과목을 ‘학습하고 있다’는 느낌 자체를 잃는 경우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의식했습니다. 국/영/수/생/지 각각 15/10/25/20/30의 비율로 공부했던 거 같네요.


그리고 6월 모의고사가 되었습니다. 국, 수, 영, 생, 지 순서대로 97, 96, 100, 47, 32점을 받았네요. 사실 국어의 경우 신유형이 나와서 매우 당황했지만, 모르는 문제나 시간이 부족했을 때의 풀이 요령을 익혀둔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수학의 경우 꾸준히 킬러-준킬러 중심으로 학습했는데(전반적으로 2015년 말과 풀이 방법은 같으나, 전에 생1 과목에 대한 문단에서 말했듯 일반화할 수 있는 도구들을 최대한 발견하고 체화하려고 애썼습니다) 이게 좋은 결과를 발휘했네요. 영어의 경우에는 꾸준히 해왔었던 부분이 있었고, 생1의 경우도 전반적인 개념을 다룬 문제들이 훨씬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선지가 훨씬 더 세밀하게 보이는 느낌이 들었고, 지엽적인 문제나 의도적인 낚시의 경우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푸는 시간이 빨라져 15분 약간 안되는 시간에 개념을 다 풀고 유전 문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 -9월 모의고사(2016. 6 - 2016. 9)


문제는 지2 였는데, 당시 지2가 매우 어려워 (1컷 41, 32점의 경우 백분위 85) 지금까지의 학습 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9월까지의 학습에 있어 지2에 관심을 더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개념상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더 세부적으로 정리하려 했고, 최대한 개념서 한 권에 모르는 내용을 자세히 담아가려 했습니다. 애초에 수능 날 쉬는 시간에 여러 권의 개념서를 학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서, 하나에 다 담아서 제대로 가져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네요. 지2의 경우 오지훈t 커리를 따라갔는데, 9월 시험에서 틀린 문제의 경우 참고할 개념이 충분히 서술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그리고 6월 시험의 난이도로 봐서 충분히 지엽적인 무언가를 낼 수 있겠다 싶어) 교과서를 샀습니다. 원래는 세부적인 개념까지 체화하기 위함이었는데,


하필 이때 슬럼프가 왔습니다. 공부가 지겨웠고, 몸이 아팠고, 혈당이 잘 조절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저한테 숙제로 느껴지곤 하네요. 어찌되었건, 기분과는 상관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던 상황임을 알았기 때문에 꾸역꾸역 공부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열의가 없는 상황임에도 의지를 투자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 눈을 다시 감고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흐트러졌던 시기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했을 때, 이 시간에 이 정도의 강도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있을 것 같네요. 역설적으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수능 전체의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은 수능 전날입니다. 시간 당 휘발되는 지식을 생각했을 때, 결국 전 날에 공부했던 부분이(지식이든 태도든)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남을 수 밖에 없겠지요. 과목에 따라, 필요에 따라, 그리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 얼마나 노출이 됐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저는 열심히 했던 사탐/과탐 과목들의 개념이 아예 기억이 안 납니다. 정리하자면 결국 수능에 나오는 과목의 지식은 빨리 휘발된다는 얘기이고, 당일 날 이 밑 빠진 독에 누가 가장 물을 많이 채운 것처럼 보이느냐로 성적이 결정된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수능 직전에 가까워질수록 독에 채운 물은 미처 빠질 틈이 없을 것이고, 이때 폭발적인 속도로 물을 길어 나를 수 있다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러나 보통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거의 고갈되다시피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게 관성이었고, 그 관성을 제가 슬럼프 때 지킨 것이 저는 결과적인 성공에 압도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작심삼일을 거듭했지만, 적어도 아예 놓아버리고 싶은 욕구에 지지는 않고 몇 시간이라도 저항한 게 이 시기에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이 드네요.


9월의 성적은 딱 한 만큼 나왔습니다. 국/수/영/생/지 순서대로 93, 90, 100, 48, 47. 그래도 꾸준히 한 지2에서(그리고 시험이 쉽게 나오기도 했고요 : 1컷 41 -> 47) 성적 상승이 빛을 발했고, 국어와 수학에서는 실수를 했습니다. 특히 수학에서는 21번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제대로 풀지 못했고, (부분적분 문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하진 않은데, 분명 비슷한 문제를 본 적이 있음에도 그 동안 정립했던 태도적인 부분을 신뢰하지 않았어요. 함수를 적분으로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알고보니 그 함수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적분이 되지 않는 함수였지요...) 30번도 못 풀고 무엇보다 1번을 틀렸습니다. 벡터 성분끼리 더하는 문제였는데 오답 정리를 하며 이건 우리 엄마, 아빠, 심지어 우리 집 강아지도 암산으로 풀텐데(+ 연산 자체만 보면) 이걸 틀리네 하고 혀를 찼었죠. 결과적으로는, 아 내가 지금 많이 풀어졌구나 정신차려야겠다 자극이 되는 지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3. -수능(2016. 9 - 2016. 11)

 

이때부터 다시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킬러에 대한 부분, 시험 세트 하나를 대하는 것에 대한 태도에 대한 부분 모두 치밀하게 정리했었어요. 부족한 부분의 지식에 대해 선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계속 준비했습니다. 국어와 영어의 경우는 어느정도 감이 올라와있었기 때문에, 지식적인 부분은 모의고사를 봤을 때 미숙한 곳에 한해서만 보완했습니다. 요컨대 시험 시간의 전반적인 운용 중심으로(거시적으로) 보았던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수학은 킬러, 국/영은 시험 운용, 그리고 과탐은 지엽과 킬러 시험 운용 모두에 신경썼습니다.


특이한 게 하나 있다면 한 달 전에 언어 계열 과목의 사설 모의고사를 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실모 시장이 크지 않기도 했고, 특히 언어 계열 과목의 경우 평가원 시험과 문제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다른 부분들이 있지요. 그런 부분으로 인해서 내가 쌓아온 방법에 대한 확신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출을 실전 모의고사보듯 풀었습니다. 단순히 정답과 오답을 찾는 대신, 선지에 대한 근거를 세밀하게 찾는 것으로 대신함으로써 식상하지 않게 모의고사를 볼 수 있었음. 그러나 수학과 과학탐구 영역의 경우, 실전 모의고사를 계속 풀고 정리하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특히 과탐의 경우 아침에 잠이 안 깰 때 요긴하게 쓰였는데, 난이도가 높은 모의고사를 풀며(지금도 너무 많이 틀려서 1등급 컷을 봤더니 34점이었던 경험이 기억이 납니다)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잠을 깼네요.


이때에 관해 특히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멘탈 관리가 되겠습니다. 수험생은 매 순간 모두가 외롭지만, 특히 이때는 거의 절대적으로 모두가 외로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점수가 나쁘든, 좋든, 어떤 상황이든 그렇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런 정신적인 빈곤함이 혈당을 잡는 데에 있어 영향을 미쳤고, 실제로 의학적인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정상 혈당이 100인데, 아무리 인슐린을 맞아도 혈당이 300, 400을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일주일 전에도, 하루 전에도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고, 가족들은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서술할 내용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고, 저는 제가 택한 방법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했듯 시험이 다가올수록 더 마음을 써서 공부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는 결국 응급실에 가지 않고 버텼습니다. 현재 저는 눈 관련해서 가벼운 합병증이 있고, 어쩌면 이때의 경험이 아주 조금은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분명 그 결정으로 인해 지금 내 몸이 더 상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저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아픈 저를 걱정하지만, 제가 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었다면 아마 그 걱정도 하다 결국 지쳐버리고 마는 종류의 걱정이 되었을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됐든 제 건강은 현재 상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물론 저는 여러분의 경우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 수능이 가까워올수록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한다는 진리와, 컨디션 관리 사이의 중도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외로움의 경우에는 분명히 주지시켜드리고 싶네요. 이 부분은 왕도가 없습니다. 수능이 끝나야만 끝날 문제임을 이해하시고, 스스로 객관화하며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가 피하려고 하는 마음 안에 숨고 있다는 건 자신만 압니다. 안되면 저는 기꺼이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게추를 기꺼이 고통스러운 쪽으로 다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제 몸에 못 할 짓을 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합니다.


수능 마지막 일 주일은 수/과탐 파이널, 그 밖의 단권화한 지엽적인 개념/어려운 부분/오답을 복습하며 지냈습니다. 국어와 영어에 경우는 태도에 관해 정리한 노트를 보며 평가원 모의고사를 가지고 연습하는 식이었고요. D-7에서 D-1로 갈수록 더 많은 부분을 속도감 있게 보는 식으로 정리를 했고, 마지막엔 거의 전 영역을 훑을 수 있었습니다. 수능 날도 이것과 똑같이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었네요.


잠이 오지 않아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2시간 정도를 겨우 자고 수능을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2017수능은 매우 어려웠고, 교문을 나오면서 저는 제가 망한 줄 알았습니다. 확실히 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도 없었고(영어는 괜찮았습니다), 긴장감도 너무 컸고 시간이 남은 과목이 영어를 제외하고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채점하고 나서 결과가 괜찮음을 알았습니다. 국/수/영/생/지 각각 95, 88, 100, 47, 43. 


와중에 정말 정직하게 점수가 나왔다는 점은 참 웃겼습니다. 글 이전 수학의 경우 킬러에 대한 이야기만 했을 뿐 개념을 제대로 정리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지요. 21번을 맞히고(부분을 나눠서 케이스로 생각하는 유형에 대한 태도를 그 전에 정리해놓았었어요), 18번을 틀렸습니다. 정답률이 70%에 육박하는 문제였고, 통계 문제였는데요. 지구과학 2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영어 과목을 본 후 쉬면서 겨우겨우 멘탈을 다잡고 직전에 개념서를 보았는데, 거기서 본 부분이 문제에 나왔지만 힘을 주어 보지 않아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중간 규모와 종관 규모 중 더 큰 것을 구별하는 문제였는데 뭐가 더 큰 지 알 수 없었고, 찍었는데 틀렸습니다. 이걸 맞았다면 아마 1등급을 받았겠지요. 자세한 얘기는 수능 리뷰 편에서 하겠습니다.






4. 그리고 다시 2월(-2017. 2)


가채점이 끝나고 성적을 보니 Fait 기준 전국 1,000등 정도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누적 백분위로는 0.6% 정도였고, 서울대 중상위과까지는 무난한 성적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여기서 관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월인원. 애초에 2과목을 노렸던 이유는 원래 제 목표였던 서울대 수의예과를 가기 위함이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대 수의대는 정시 일반전형에 인원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시 이월 인원이 그 해 정시 일반전형의 모집인원이 되는 구조였었죠. 다시 보아도 무모할 정도의 선택이기는 했네요. 


아직도 그 날이 기억이 납니다. 카페에 앉아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입학처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는데, (이건 아마 수능 보고 나면 공감이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이월 인원 발표가 난거죠. 확인했더니 10명. 너그러운 숫자였습니다. 됐다, 생각하고 가군에 서울대 수의대 원서를 쓸 것을 확정했습니다. 나군과 다군의 경우 나이와 상황이 있는 만큼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 안정 정도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원광대 의대, 동국대 한의대)에 원서를 썼습니다. ‘ㄴ’ 모 입시 컨설팅 사이트 기준으로 칸수 6/6/7로 기억합니다. 과외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군외대학 중 카이스트에도 원서를 넣었네요.


1월 23일날 서울대 합격자 발표가 떴습니다. 집이 이사를 가는 날이었고, 이삿짐을 나르며 틈 날 때마다 입학처 사이트의 F5 키를 눌러보던 중 합격자 발표창이 떴습니다. 너무 무서워 차마 누르지 못한 합격 창을 누나가 눌러주었고 거기에는 합격이란 문자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 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지 못했던 제가 처음으로 갖게 된 견고한 승리의 증표로 느껴졌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오롯이 세운 목표를 가지고 뛰어들었던 전쟁에서 나는 승리했고, 이제 이 승리의 경험이 앞으로 인생에 있어 내가 계속 겪게 될 시련에 맞설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네요.


그렇게 입시가 끝났습니다. 나머지 대학들에도 합격해 잠깐 의사가 된다면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닫힌 사회에서 살기에 여러 의미로 너무 소수자였던 저는 진로 결정에 있어 자율성이 크고 인간관계가 조금 더 유연한 수의대를 골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강아지가 있는 한 내가 왜 수의사가 되기를 선택했는지가 계속 기억날 것 같았거든요. 등록금을 이체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이랑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 이제 입시가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곧 있을 생일에는 뭘 할까, 마음 편히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네요!

궁금한 점 있으시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다들 좋은 저녁되시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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