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도 [735110]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0-12-09 02:08:20
조회수 3,921

수능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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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치뤄진지 일주일이 넘어갔네요. 잠시 예전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올해 수능후기가 아니라서 조금 아쉽습니다.


1. 나는 "실패자"다.
 세번의 수능, 1억의 투자.
 그러나, 성적은 떨어졌으며 인맥과 건강 모두 잃었음.

오랜 수험생활을 하며 느낀게 정말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입니다.

재수를 실패하고, 삼반수를 준비하던 중 한 친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친구는 저와 같은 대학을 진학한 또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더군요. 우연찮게, 아니면 그 친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 걔는 나보다 고등학교때는 공부도잘했는데 결과는 똑같네. 공부도 어지간히 안했나보다."

아닙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단 한번도 시간을 허투루 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자리에 앉아 있다가 탈장 및 치핵이 생겼습니다. 수면시간이 부족해 피부 혈관이 터지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진 적도 있습니다. 주위에서도 '저정도까지 공부를 해야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후회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이들은 결과로 모든걸 판단하더라구요.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저에게 그런말을 한 친구가 저에 대해 아는것은 입시 실패일 뿐이니까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서 더 씁쓸했습니다. 결국 저 말은 삼반수를 결정적으로 하게 된 원인이 되었죠.

2. 노력하면 돌아온다?
대형 입시학원을 가본 사람이면 알 것입니다. 똑같은 성적,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이 한 반을 구성하게 되죠. 그러나 1년뒤 진학하는 대학은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강남대성 기숙학원에 1년을 투자했습니다. 기숙학원의 특성상 학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보게 되죠. 다시말해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공부하는지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니, 강사와 교사는 말합니다.
노력하면 결과는 다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글쎄요, 제 반의 진학 실적을 보면 소위 '재능충' 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열심히 하지만 성적이 안나오거나, 들쑥날쑥한 친구들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습니다.

공부방법이 잘못되었다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 입시의 문턱에 걸려넘어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눈에는 정말 피눈물나도록 열심히 달려온사람이 많이 실패하는거 같았습니다. 수능을 잘 본 인원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닌, 잘하는 사람입니다. 실력, 자신의 능력치를 키우는게 중요합니다. 입시에서 노력이 큰 변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력이라는 천으로 자신의 실력을 가리지 않았음 합니다.

3. 고독, 자기와의 싸움

필자는 삼수를 했습니다. 재수때 실패 원인을 분석하려해도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정말 잘하는 과목, 항상 만점을 받았던 과목에서 5등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번만 더하면 정말 잘될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후회없이 살고싶어 나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였습니다.

단칸방, 매달 식비와 학원비, 공책과 샤프.

이 세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이 공부했습니다. 물론 핸드폰도 없었습니다. 7~8개월동안 부모님을 포함한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와 식사와 숙면. 최대한 공부 시간 및 효율을 끌어올리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공부량을 낳았죠. 지금생각해봐도 절박하게 공부한것 같습니다.

학원에서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먹을것과 책을 주더라구요. 부모님께 손벌리기 싫어 (집안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저를 뒷바라지 해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움받기가 싫더라구요. 제가 선택한 길인데 남에게 도움을 받기 싫었습니다.) 알바하면서 모아온 목돈을 쓰는 제모습이 대견하고 안타까웠나봅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실패했습니다. 제가 1년동안 봤던 모든 시험의 틀린 갯수를 합한것과 비슷하게 틀렸습니다. 건강, 사람, 그리고 시간. 모든것을 잃는 기분이었습니다. 죽고싶었고 극복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죠.

4. 패배의식

삼수가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서울대학교 과잠을 입고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왜 과잠을 입었는지 물어보니, 너가 실패해서 못간 대학이니까 과잠이라도 보고 입어보라는 의도였다고 하더라구요.

주저앉아 울고 싶었습니다. 제 노력, 시간이 헛되었단 걸 보여주는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친구의 의도에 정확히 맞아떨어진것 같습니다.

헤어질때, 학교에 애교심을 가지란 말을 하고 가더라구요. 정말 끝까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사람이 나약해지니까 주위에서 조롱하고 무시하는건가?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고, 패배의식은 제 주위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5.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전직 국가대표셨던 아버지는 항상 힘든일이 있을 때 저 문구를 입에 되뇌이곤 했습니다. 저도 저 문구가 제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부전자전은 어쩔 수 없는것 같습니다.

수능을 미련없이 떨쳐냈습니다. 4수, 5수를 해도 실수를 할 것 같고, 긴장감을 극복하지 못할것 같았으며, 나의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지쳐있던 날, 방안에서 하염없이 울던 날에 아무생각없이 저 문구를 되뇌였습니다. 습관처럼 읊조리던 문구가 이럴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외활동, 운동, 공부, 알바.
몸이 으스러지도록 살았습니다. 오랜 입시생활의 결과로 사회에 대해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뉴닉, 순살브리핑, 어피티, 앨리스 미디어. 앞에서 첨언한 사설 메일신문과 경제 및 인문학 책을 읽기 위해 하루에 2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체력이 부족하면 정신 및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 하루에 2시간씩 운동했습니다. 돈이 없어 알바도 하고, 장학금을 타고싶어 학점 4.33을 만들었습니다. 스펙이 필요한 것 같아 기업 대외활동과 멘토링을 했습니다.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 같아 조기졸업 요건을 알아봤고,
남들은 1학기 휴학하고 가는 군대, 저는 칼복학으로 시간을 아끼려고 했습니다. 잘하면 졸업은 제 나이대로 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현재는 편입할수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군대에서 시간을 쪼개 영어 및 전공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을 키우고 싶어 신병교육조교로써 군 복무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6. 후회중인가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질문의 의도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많은것을 배웠고, 힘든일이 있을때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자체는 실패했지만, 공부법 및 이해하는 요령에 있어서는 향상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공 공부 및 영어공부에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조금더 올바른 삶을 가게 해주었습니다. 입시의 결과, 나에게는 남들처럼 행운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입시생활을 청산하고 나서 '더 열심히 버둥거려야만 실패를 만회할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제 좌우명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 를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군요.

제가 공부를 "소홀히" 했는데 입시에 성공했다? 그럼 저는 계속 요행만을 추구할 것이며 이는 언젠가 제 발목을 잡을 겁니다. 나이들어서 험한꼴 보느니 지금 깨닫는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7.  꿈

저의 꿈은 변호사입니다. 화학공학도에게 듣는 말 치고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겠네요.

알바하면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공부가 하고싶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자신의 꿈을 접고 알바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군생활중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운동을 배워 서울에 자신의 헬스장을 차리는 게 목표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서울에서 생활할 지를 몰라 감을 잡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변호사가 된다면,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 및 정책을 잘 알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필자도 삼수 중, 모아놓은 돈이 떨어져 밥을 굶고 책을 사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공감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돈으로는 이들을 도울 수 없으니, 정책과 법을 잘 알고 이 정보를 말해 준다는 것으로도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 주위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법으로 이들을 보호해 준다면 외압 (사기를 당하는 것이나, 돈이 없지만 지원책을 모르는 경우) 없이 꿈으로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제 신념이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변호사가 되기위해 법 공부 및 리트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입시 또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꿈과 진로를 확실히 했음 좋겠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입시의 결과로  꿈이 정해진 케이스네요.

제가하는말이 다시 도전하는 수험생들에게 힘이 되었음 하네요.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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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점 아닌 표점따는 · 784903 · 20/12/09 02:13 · MS 2017

    최선을 다한다는 말.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글쓴이님처럼까진 아니어도 입시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기에 충분히 공감됩니다.
    다 겪으면서 느끼는 거는 학벌도 중요하고 주변 인식도 중요하지만, 어쨌건 해당 과정을 겪으면서 본인이 얻어가는 게 있으면 그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부디 좋은 법조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 코우사카 키리노 · 877618 · 20/12/09 02:13 · MS 2019

    설대 과잠입고간 친구가 이해가 안되는데 내가 이상한건가

  • 과외구하러왔음 · 976483 · 20/12/09 02:15 · MS 2020 (수정됨)

    저도 이해안감... 그 서울대 과잠 입고온 애가 말한거 다 핑계같고 난 한번에 서울대 왔는데 ㅋㅋ 넌 실패했네 이런 느낌임...

  • 쏭도 · 735110 · 20/12/09 17:12 · MS 2017 (수정됨)

    지금은 연락 안하고 있긴 합니다...ㅎ
    뭐 상대방을 까내리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생각합니다. 굉장히 미성숙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 과외구하러왔음 · 976483 · 20/12/09 02:18 · MS 2020 (수정됨)

    이번에 재수하면서 말도 안되는 점수? 6.9모랑 그동안 봤던 사설모의고사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아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긴하지만... 그래도 꿈이 있는 이상 삼반수 하려구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글 작성자분께서 말씀하신거처럼 주변사람들이 물어봤을때 나중에 후회 안한다고 말할때까지 한번 해보고오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쏭도 · 735110 · 20/12/09 02:34 · MS 2017

    충분히 공감합니다. 몇년전 저의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 부디 다음에는 후회 안할 과정과 결과 모두 잡길 기도하겠습니다.

  • 정령의 형상 · 966226 · 20/12/09 10:09 · MS 2020

    4번친구의 의도 = 불난집에 부채질 = 손절각

  • 바안수공식 · 936524 · 20/12/09 11:07 · MS 2019

    서울대 과잠 친구이야기
    내가 당했으면 진짜
    진심 눈뒤집히고 그냥 팰듯

  • This is · 949946 · 20/12/09 15:27 · MS 2020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Pa · 916065 · 21/12/13 01:42 · MS 2019

    서울대과잠 애교심을 가지라는 말에 눈이 뒤집히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