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수능 국어 “이전보다 압축돼 불친절해진 독서지문이 변별력”
한국교육평가인증 국어교육연구소 임재서 소장
한국교육평가인증 국어교육연구소 임재서 소장이 2022학년도 수능 국어를 두고 독서 파트가 특히 어려웠다는 평가를 19일 내놓았다.
문학, 화작(화법과 작문), 언매(언어와 매체) 파트에도 꽤 까다로운 문항이 섞여 있었지만, 예년의 수능이나 올해 모의평가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언매보다는 화작의 난도를 높이는 데 좀 더 힘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임 소장은 “특히 화작의 40번은 제시문의 아주 세세한 정보를 놓치면 오답을 골라 놓고도 맞았다고 생각하는, 소위 ‘의문사’를 당하기 십상인 문항이었다”고 말했다. 오답률이 꽤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45번 문항은 인과 관계를 역전시킨 진술로 정답을 만든, 화작 파트의 ‘전통적인’ ‘좋은’ 문항이었다는 설명이다. 임 소장은 “이에 비해 언매 파트의 문법에서는 오히려 예년처럼 까다롭다고 할 만한 문항은 없었다”라며 “물론 독서 파트의 어려움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독서 이외의 파트에 대한 학생들의 체감 난도는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독서론을 제외한 독서 파트의 나머지 세 지문은 모두 짧은 분량, 불친절한 서술, 불투명한 선지라는 최근의 경향을 철저하게 따랐다는 평가다. 보통은 세 지문 중 하나는 난도를 낮춰 숨통을 트여 주는 역할을 했지만, 올해 수능 국어에서는 이런 지문이 없었다. 임 소장은 “아마도 많은 학생들이 독서론을 손쉽게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온 인문-예술 지문의 첫 문장을 보고는 당황했을 것”이라며 “사변적이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독일 관념 철학의 대가인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이 수능 국어 지문의 제재로 다뤄질 것을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사변 철학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소문 난 헤겔 철학을 짧은 분량으로 소개하다 보니, (가)는 모든 문장이 주제문 같은 역할을 하는 ‘뻑뻑한’ 지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입장이 표 나게 드러나는 에세이 같은 문체로 쓰여 있어, 기존의 수능 국어 지문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런 이질감도 많은 학생들을 당황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임 소장은 모든 문항의 선지들이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그중 압권은 킬러 문항인 8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면성’, ‘주관성’, ‘외면성’, ‘객관성’ 같은 헤겔 철학 특유의 생경한 개념어들이 난무한 지문의 숲 속에서 길을 잃기 쉬워, 많은 학생들이 오답을 고른 듯하다”라며 “이 개념어들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개념어들의 관계를 포착해 놓치지 않은 학생이라면 2번 선지를 골라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장 많이 고른 4번 선지를 보자. ‘현실에서는 객관성이 사라진 주관성’이라는 선지 구절에서 확실히 틀린 표지를 읽어 냈어야 한다. (나)의 글쓴이는 3문단에서 ‘완전한 주관성이 재객관화되는 단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서술한 내용을 부연하거나 강조하는 등의 문장이 없어, 모든 문장을 집중해서 읽어 가며 개념 간의 관계를 치밀하게 포착해야 선지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은 나머지 두 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수험생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선지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지문에 나오지도 않았다면서 배경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이 난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정보가 나오긴 나왔으나, 너무 불친절하게 나왔다는 게 임 소장의 분석이다.
킬러 문항인 경제 지문의 13번의 경우 논란이 된 것은, ‘갑 국 통화에 대한 을 국 통화의 환율 하락’과 ‘갑 국의 경상 수지 개선’ 간의 인과 관계에 대한 정보가 지문에 나와 있는지 여부이다. 3문단을 보면 나와 있다. 미국은 경상 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금 준비량이 급감했다. 이런 상황의 해결 방법은 미국 통화의 가치를 낮추거나 미국의 무역 상대국 통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즉, 미국 통화의 가치를 낮추거나 무역 상대국 통화의 가치를 높이면 경상 수지 적자가 개선된다. 그리고 미국 상대국 통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지문에서는 ‘달러화에 대한 여타국 통화의 환율을 하락’시키는 것으로 표현했다. 물론 이러한 정보를 남김없이 포착하는 것은, 시간제한에 걸려 있는 학생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배경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어라운드 뷰’ 장치를 다룬 기술 지문도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선지 판단에 필요한 정보는 곳곳에 박혀 있었다. 임 소장은 “결론적으로, 모든 지문이 그 분량이 줄어든 만큼, 아주 미세한 지점까지 (이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착하고 장악하고 있어야만 선지 판단이 가능하도록 출제되었다는 점이, 이번 수능 국어 독서 파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2021-11-19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394761?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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