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윤리] 벤담의 형벌론에 관한 질의응답
저희 연구소 카페에 올라왔던 질문인데,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질문]
이상 모의고사 오감도 생활과 윤리 2회 19번 ⑤ 해설에서, 칸트는 형벌의 가치와 범죄로 얻는 이득의 가치가 같아야 하고, 벤담은 형벌의 가치가 범죄로 얻는 이득의 가치보다 더 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쓰여 있는데, 그렇다면 형벌의 가치와 범죄로 얻는 이득의 가치가 같다면 벤담은 그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하나요 아니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나요?
[답변]
벤담은 '형벌과 위법 행위 사이의 비례의 규칙' 중 첫째로 "위법 행위의 이득을 능가하라."입니다. 거기서 벤담은 "형벌의 가치는 어떤 경우에든 위법 행위에서 얻는 이득의 가치를 능가하기에 충분해야 한다."라는 베카리아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때 '형벌의 가치'를 '형량(으로부터 수형자가 느낄 고통)'으로 해석합니다. 벤담이 이 규칙을 제시한 것은 형벌의 효력을 위한 것입니다. 범죄자가 위법 행위로 얻을 이득보다 더 큰 손해를 안겨 주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은 손해를 무릅쓰고 위법 행위를 저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벤담이 제시한 이 규칙은 '죄'가 아니라 '벌'을 규정하는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위법으로 규정된 행위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얼마큼 처벌할 것이냐가 이 규칙의 핵심입니다. 처벌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위법 행위를 저지른 자가 있을 때, 그에게 얼마나 큰 손해를 주어야 법의 효력과 법체계의 안정을 지킬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어떤 위법 행위가 발생하든 그 이익을 웃도는 손해를 줄 수 있을 형벌 체계가 완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형벌은 "위법 행위의 이득이나 해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편차에 따라서 양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론』 제15장) 가변성을 띠어야만 합니다. 즉, 사법부는 언제나 범죄 이익을 능가하는 형량을 선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형량을 선고해야 합니다. 만약 형벌의 가변성이 충분치 못해 형량(형벌의 가치)이 범죄 이익을 능가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형벌 체계는 잘못된 것이며 개정되어야 합니다.
"형벌의 가치와 범죄로 얻는 이득의 가치가 같다"는 상황은, 사법부가 범죄자에게 범죄 이익을 '능가하는' 손해를 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형벌은 위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위법과 준법의 가치를 동등하게 제시해 양자택일을 시키는 꼴입니다. 벤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나쁜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처벌은 해야 할 것입니다. 위법과 준법의 양자택일을 시킬지언정, 처벌을 아예 안 해서 위법을 장려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량의 범위를 더 넓게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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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형벌 가치에 범죄예방효과도 포함되고 이퀄값이면 처벌하든 안 하든 상관없지 않나요?
벤담이 여기서 말한 '형벌의 가치'라는 건 범죄 예방 효과처럼 처벌을 행하면 기대되는 사회적 손익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를 만한 동기를 억제할 형량을 뜻합니다. "범죄 행위가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보다 처벌이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이 커야 한다."라는 원칙과, "범죄 행위가 (범죄자에게) 주는 이익의 가치보다 형벌의 가치(형벌이 범죄자에게 가하는 제재의 수준)가 커야 한다."라는 원칙은 궤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공리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천명하는 것뿐이고, 후자는 공리를 위해 만들어진 법체계의 효력 및 안정을 위한 조건입니다.
말씀하신 '이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범죄 행위가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과 처벌이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이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그 경우와 이 경우는 서로 다릅니다. 물론 채윈 님이 상정하신 '범죄 행위가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과 처벌이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이 같은 경우'라면, 처벌하거나 말거나 어느 쪽이든 괜찮다는 것이 벤담이 내릴 결론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질문(모의고사 해설?) 중에 [칸트는 형벌의 가치와 범죄로 얻는 이득의 가치가 같아야 하고]==>이게 맞나요???
여기서 말하는 '형벌의 가치'의 맥락에서, 동해 보복 원칙을 표현한 것입니다.
제 질문은 그게 아니긴 한데...위 학생의 질문과는 상관없을 것 같네요.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