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학부 수준의 훌륭한 개론 수업이란
요즘 <언어철학> 수업 시간에는 양상 주제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양상 주제를 처음 들어간 지난주 수요일, 연세대 철학과의 자랑이자 연세대의 자랑, 대한민국의 자랑이신 선우환 교수님께서는 양상 개념을 ‘논리적/형이상학적 양상’과 ‘물리적/자연적 양상’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논리적/형이상학적 필연성은 물리적/자연적 필연성보다 더 강한 필연성이고, 물리적/자연적 가능성은 논리적/형이상학적 가능성보다 더 강한 가능성이다. 교수님께서는 논리적/형이상학적으로 필연성이 있는 문장, 논리적/형이상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문장, 물리적/자연적으로 필연성이 있는 문장, 물리적/자연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문장의 예를 몇 개씩 제시해 주셨다. (예를 들어, “쿼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적/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인 문장이고,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는 물리적/자연적으로 필연적인 문장이지만 논리적/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인 문장은 아니다. “우주선이 광속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논리적/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 문장이나, 물리적/자연적으로 가능한 문장은 아니다.)
한 학생이 질문했다. “‘논리적’과 ‘형이상학적’을 항상 같이 묶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요?” 교수님께서는 논리적 양상과 형이상학적 양상을 동일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오늘날 언어철학이나 논리철학에서의 지배적인 생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 입장을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별 군말 없이 그냥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쨌든 널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학부 수준의 어떤 개론 수업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에 대한 설명은 아예 하지 않고(혹은 거의 하지 않고), 학부생들에게 자신의 학설을 열심히 설파하는 분들이 있다. 2019년에 나도 그런 수업을 들으며 고통받았던 기억이 난다. 반면, 지금 듣고 있는 선우환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어떤 특정 철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들을 개론적인 수준에서 소개받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이런 수업들 덕분에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과 흥미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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