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관련 어원 이야기) 을씨년스럽다
예 뭐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이 왔는데 '을사년'과 관련된 어원 이야기 하나 말아 보겠습니다
아마 다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흔히 음산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묘사할 때 널리 쓰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어의 어원이 1905년 을사늑약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을씨년스럽다'는 20세기 기록에 '을사년시럽다', '을스년스럽다', '을시년스럽다' 등으로 나타납니다.
1908년의 기록을 보아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이 쓰였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구히서(1939년생 연극 평론가)의 구술 자료에서 어린 시절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 증언도 있고요.
따라서 당연히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년+-스럽-'의 구성으로 볼 수 있는데, '-스럽-'이라는 형용사 파생 접미사가 17세기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을사년스럽다'의 생성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봤자 17세기입니다. '乙巳'의 한자표기는 '을ᄉᆞ'인데, 아래아는 1음절에서 보통 ㅏ로 바뀌었으므로 '을사'가 됐을 겁니다. 다만 '을사>을스'는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설명은 1음절의 ㅡ에 영향을 받아 2음절의 ㅏ가 ㅡ로 바뀌었다거나 혹은 의미가 비슷한 '스산하다'나 '으스스하다' 등에 유추되었을 경우입니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선지 '을사'가 '을스'로 변하고, ㅅ 뒤 ㅡ는 흔히 전설모음화를 겪었기 때문에 '가스내>가시내', '슬컷>실컷', '승겁다>싱겁다' 등과 같은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을사년스럽다'의 '을사년'이 언제인지 알아내야 하는데 그게 1905년 즉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가 아닌 두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 후기 재야 선비인 송남 조재삼(1808~1866)이 저술한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술입니다. 송남잡지에 "俗以乙巳年凶為畏故今無生歲樂者言之(세상에서 을사년(乙巳年)은 흉하다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지금 생전 낙이 없는 것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송남잡지가 저술될 시기에도 이미 '을사년'은 스산하고 흉흉한 분위기를 나타냈다는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건 한영자전(1897)의 기술입니다. 한영자전에 실릴 정도로 '을사(을ᄉᆞ)'라는 말은 '가난'과 '고통'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였단 게 밝혀진 겁니다. 왜냐면 한영자전은 외국인이 쓴 사전인데 외국인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았단 거기 때문에 꽤 많이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을씨년스럽다'의 뜻풀이에 '보기에 살림이 매우 가난한 데가 있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을씨년스럽다'의 선대형인 '을사/을ᄉᆞ년스럽다'의 '을사년'이 1905년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한영자전의 설명대로 1785년에 대기근이 있었는지를 봐야 하는데, 문제는 정조실록(正祖實錄) 9년(1785년)에는 기근에 대한 언급이 딱히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1783년과 1784년 두 해에 걸쳐 큰 흉년이 들었고 그에 따른 전국적인 규모의 구휼 사업이 실행되었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1785년에는 민란에 의한 역모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만큼 1785년은 민심이 흉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년 동안이나 지속된 흉년으로 1785년에는 정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을, 빈곤한 삶을 살았어야 했을 겁니다. 만약 '을사년'이 1785년을 나타내는 거라면, 1785년 이후 어느 시기에 1785년과 같은 굶주림에 고통을 받게 되면서 그 해를 떠올려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1785년 이후라는 거고, 한영자전이 편찬된 1897년 이전, 또 송남잡지가 출간된 시기인 1855년 이전에 형성되었을 수 있으므로,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은 19세기 초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1. 을ᄉᆞ년>을사년>을스년>을시년>을씨년
2. 그리고 을사는 아마 1785년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음
참고 문헌
조항범 (2014),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에 대하여," 한국어학 64, 한국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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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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