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요즘. 대학생] 대학생의 자격-1
여기. 요즘, 대학생
대학생의 자격-1
삶의 방향성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캠퍼스를 거닐던 중 시선을 끄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중앙도서관 옆에 걸린 동아리 홍보 현수막에는 [대학생이 졸업 전에 해야 할 101가지] '대학생의 자격'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생의 자격'은 공모전을 준비하며 만난 대학생들이 만든 동아리라고 한다. 그들은 요즘 대학생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한탄 아닌 한탄을 하다 '미약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대안을 제시해보자'며 '대학생의 자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스펙 쌓기와 취업준비처럼 정형화된 목표나 경험보다는 이를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대학생의 자격'에서는 타임캡슐 만들기, 맛집 탐방하기, 전자기기 없이 지내보기, 영화 찍기, 라디오DJ되보기, 명동 한 복판에서 춤추기, 대학로 한 복판에서 합창하기 등 통일된 주제보다는 용기와 경험을 토대로 한 대학생의 새로운 문화를 제안하려 한다.
물론 난 이 동아리에 지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대학생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보통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거친다. 이후 일부는 진로를 위해 배움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일부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같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게도 대학생에게는 '지성인'이나 '사회초년생'이라는 명칭이 달라붙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가르치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도 받아들일 줄 알며, 대학 이후에 마주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독립할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대학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심화되고 있다. 대학이 대학생이 가져야 할 비판적 사고능력이나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기보단 '취업준비 학교'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대학'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대학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이 어떠하다와 '대학생'이 어떠하다는 연관은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결정짓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등교육법 제28조에서는 대학을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 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 내린다. 내 생각에 이 정의는 대학생, 교수님, 학부모, 세금을 내는 시민들까지 큰 이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대학에 존재하는 대학생의 자격이 '라디오DJ되보기, 명동 한 복판에서 춤추기, 대학로 한 복판에서 합창하기'라고 한다면 정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할까? 나는 이 점이 대학의 목표와 대학생의 자격을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믿는다.
시대 속 개인의 자격
나는 대학생의 자격이 시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격'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데 필요 한 조건이나 능력을 말한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자격'또한 사회적 시대적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조언해준 유시민 작가의 대학생활,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1970,80년대의 '대학생의 자격'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독재를 타도하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시절의 대학생은 현재에 비해 학생 운동 시위의 횟수나 참가인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한 지금은 보수정당의 높은 위치에서 정치를 하시는 혹시 하시던 이명박, 심재철, 김문수, 이재오 같은 분들도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것을 보면 단순한 정치적 성향의 표출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시대와 집단을 벗어나 살기 힘든 존재이다. 군사독재시대에 살았던 70,80년대 대학생들 중 뜻있는 학생들은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의 진보를 꿈꾸며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투쟁하고 희생했다. 그것은 그들이 믿는 올바른 이데올로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대학생의 하나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고. 관심이 강하지 않은 학생들도 민주화나 투쟁, 연대에 대해 한 두 번쯤 고민하게 되고 참여하게 되었고 그런 활동들은 대학생의 자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처럼 시대 속 개인의 자격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규정하는 것 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대학생의 자격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나는 '자아실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역할이 진정한 배움을 하는 곳이고 취업 준비시켜주는 곳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생이라도 취업이나 돈벌이를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물론 우리 윗 세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 시대는 일자리가 충분해서 학생운동을 하느라 스펙을 쌓지 않아도 취업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요새는 취직은 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부족하니 대학생들이 기업에게 '나 여기 있소 뽑아주시오~'라며 신호 보내기 위해 스펙을 쌓는다. 대학생들은 그것을 위해 올바르던 올바르지 않든 간에 토익점수를 따고 또한 학점을 높인다. 또한 기업 실무경험을 쌓고 자격증을 따며 그것이 대학생의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자아실현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자, 행복해지자'같은 슬로건이 우리 시대 대학생의 관심사를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슬로건들은 학생운동을 하던 7080 선배들에게는 낯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자아실현'은 생각보다 현대적인 대학생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낯선 것에 호의를 갖으며 경험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때로는 방황하며 자신의 길을 찾는다. 때로는 자기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스스로를 경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모습까지 대학생의 자격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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