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은 고백 [531407] · MS 2014 · 쪽지

2016-02-28 23: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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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종마녀썰<20> 버스에서 생긴 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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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재수학원에서 끝나고 집을 가기 위해서는 2호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귀가해야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정류장 뒤에는 화장품 가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버스를 타는 시간은 언제나 10시 23분 정도,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고 3번째 노래를 소개시켜줄 때였다. 
그리고 그 때면 항상 정류장 뒤에 있는 화장품 가게 점원은 문을 닫고 있다. 가끔은 지하철 출구에서 화장품가게의 불이 켜져있는지 꺼져있는지를 확인하여 내가 늦게 왔는지, 일찍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점원은 참 미인이었다. 뭔가 도도하게 생기면서도 참하게 생겼다. 약간 신세경같은 느낌? 콧대는 자연스럽게 높았고 몸매 역시 빠질 때는 빠지고 들어갈 때는 들어가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희한하게 재수 시절에는 이쁜 여인만 보면 괜히 눈길이 가고 그랬던 거 같다. 그냥 그 시기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시기인 거 같다. 늘 귀가 시간에 화장품 가게를 닫고 버스 정류장에서 나와 같은 방향의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 그 시간대는 술마시고 귀가하는 직장인이 많아 언제나 버스안은 붐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서 가기 일쑤였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눈길이 가는 건 외모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집에 가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면서 갔던 것. 정확히 어떤 공부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어였던 거 같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항상 버스에 서서 나도 영어 ebs 연계 지문을 보고는 했다.(그리고 결국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고 한다.ㅜㅜ) 
확실한 건 그녀가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흘낏 그녀를 봤는데 그녀가 수능특강 교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한 동질감도 느껴지고, 사연도 궁금해지고, 말걸고 싶었지만 요즘같은 삭막한 사회에서, 그것도 야심한 시간대에 그런 걸 묻는 것은 범죄자로 몰리기 쉬운 짓이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퇴근길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6월 모의고사를 본 주간의 금요일 밤이었다. 그녀는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닫고 버스를 탔다. 금요일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날따라 사람이 꽤 적어 그녀와 나는 남은 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 그냥 눈 딱 감고 물어볼까? 아니야 수험생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괜한 짓 하지말자'
평소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내 할 일을 했겠지만 본인은 6모에서 학원에서 추앙받을만한 성적을 거두었고 상당히 기세가 올라온 상태였다. 나도 왜 그랬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사탕을 내밀며)'이거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대입 시험 준비하시는거에요?'
'아.. 네.. 좀 늦은 나이에 그렇게 됬어요..'
'아.. 저도 지금 수능 준비하고 있어요'
'아... 네 가끔씩 책 들고 가시는 거 보면서 알았어요 저도'
'아.. 일이랑 병행하시면 힘드시겠네요..'

나도 남을 동정할 입장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남을 동정해가며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형편상 일을 하며 대학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 담임 상담을 하고 나는 내 신세를 자각하게 되고 다시 온 신경을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그녀는 6월 말까지 목격할 수 있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요즘도 가끔씩 그 주변에 갈 일이 생기면 그 버스 정류장을 들리곤 한다. 뭐 그래봤자 지금까지 딱 1번 갔다오긴했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갈 일이 많을 것 같다. 뭔가 재수 기간동안의 애환이 담겨있는 장소인 거 같은 느낌때문이다. 
화장품 가게는 그대로이다. 그 앞에 있는 광고 진열대도 그대로이고. 10시 23분에 버스가 오는 것도 그대로이고 그 시간에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고 3번째 노래를 소개시켜주는 것도 그대로이다. 딱 하나. 그녀 하나만 달라져있었다. 그 날 이후 더이상 그녀를 볼 수 없었고 근황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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