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부로 [326183] · MS 2010 · 쪽지

2014-07-19 19:46:37
조회수 4,930

[병원이야기] 아버지의 임종

게시글 주소: https://susiapply.orbi.kr/0004707756

안녕하세요. 저는 본과3학년 병원 실습을 돌고 있는 의대생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병원실습도중 겪은 일을 일기로 남겨두었는데 갑자기 부모님생각도 나고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허접한 필력이지만 잘 읽어주세요^^
(예전에 수기게시판에 수기를 쓰다가 바빠서 끊겼는데 그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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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더이상 세상에 머무르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된다.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감염내과 실습을 돌때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회진을 돌기 전, 입원환자들에 대한 상태를 체크하고 새로 내원한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할 때였다.

 

"교수님, 오늘 ER(응급실)에 말라리아로 의심되는 환자가 입원하였습니다. fever(열) 39도까지 spiking하고 매우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 그래? 요즘 말라리아 환자 흔치 않은데....우선 가서 봐보도록 하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의식은 이미 없었으며 자가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중증의 말라리아 감염상태로 간과 신장이 모두 망가져서 투석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범한 50대의 남성으로 대한민국의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위해 아프리카에 파견되어 건설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지역은 특히 말라리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여행하기 전에 꼭 예방적으로 약을 처방받아 복용기준에 맞춰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환자의 병력을 청취해보니 그는 약을 처방받기는 하였으나 약 복용법을 착각해서인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는 별 증상이 없었는데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몇일 후부터 갑자기 열이 났다고 한다.

그는 감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리게 되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8일에서 길게는 한달가량 아무런 증상이 없이 잠복기를 거쳤다가 말라리아 기생충이 간에서 증식을 하고 충분한 시간을 거쳐 간세포를 깨고 나와서 적혈구를 감염시키는데 그때부터 열이 나며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말라리아가 심할 경우에는 간, 신장 등이 망가지고 급성 호흡부전이 올 수 도 있는데 이분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그의 옆에는 그의 형님과 딸이 지키고 서있었다. 특히 딸은 울다가 지친 상태였는지 눈이 부어있고 힘이 없어보였다.

"ㅇㅇㅇ님 보호자 분들이신가요?"

"네...선생님... 지금 아빠 상태는 어떤가요? 사실 수 있는거죠? 그렇죠 선생님?"

"우선 치료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버님께서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이십니다....저희가 뭐라고 말씀을 못드리겠네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두 눈에 금세 눈물이 고여 언제든지 흐를것만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몇년전 쓰러져 응급실에 입원하셨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갑자기 울컥했지만 환자 앞이었던지라 감정을 추스려야 했다.


국내에서 말라리아 환자는 보기가 어려워 대부분 실습을 돌면서 말라리아 케이스를 접하지 못한다. 심지어 교수님조차 말라리아 환자를 많이 못보셔서 다같이 스테이션에 모여 치료가이드라인을 다시 찾아봐야했다. 아까 응급실에서 상태를 봤지만 환자가 지금의 상태를 이겨내고 살 확률을 그렇게 높지 않아보였다. 


그후 몇일간 감염내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몇일밤을 지세우며 번갈아 가면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몇일 뒤, 하늘은 야속하게도 그녀의 아버지를 데려가버렸다.

실질적으로 아저씨는 돌아가신 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떼는 일만 남았다.

산소호흡기를 떼기 전, 그녀는 아버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는데 그 말을 의도치 않게 듣게 되었다.

 

"아빠 살아생전에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아빠가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아빠를 보내려고 생각하니까 아빠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하늘에서 행복해야해. 평상시에 사랑한다는 말 많이 못해서 미안해. 아빠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에 갑자기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났고 그것을 참기위해 온 힘을 써야 했다.

그렇게 호흡기를 떼고 그녀의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날 저녁 자주연락을 드리지 못했던 아버지 생각이 문득 났다.

"아버지 뭐하고 있어요?"

"어 아들! 왠일이야~ 별일 없지? 밥은 잘 먹고?"

"네 잘지내요... 아빠... 갑자기 이 말이 하고싶어서 전화했어요... 사랑해요 아빠"

 

쑥쓰럽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부모님께 사랑표현을 아끼지 않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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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동안 부모님께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 저녁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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