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 쪽지

2024-10-13 19: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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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독서] 하이데거 철학 이해해보기(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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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갈 개념어들>

현존재(Dasein), 근본존재론(Fundamental Ontology),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

존재론적 차이(ontological difference), 다자인(Dasein),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

도구적 존재(ready-to-hand, Zuhandenheit), 선견(circumspection), 비도구적 존재(un-ready-to-hand)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 관여의 총체성(totality of involvements), 위하여-그-어떤-것(for-the-sake-of-which)

거리 제거(de-severance), 아는 것(know-that)

함께-존재(Mitsein), 그들(das Man), 사회적 존재의 선험적 구조



안녕하세요 독서칼럼에 진심인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서론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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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idegger/


참조 및 재구성.



(연습문제 1)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시골 마을 환경이 그의 철학적 사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1911년에 철학으로 전향하여 1915년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철학적 발전은 브렌타노,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키르케고르, 니체, 딜타이, 후설 등의 저작을 탐독하면서 이루어졌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방식들을 통일하는 원리에 대한 물음은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을 형성했다. 1919년부터 후설의 조교로 일하면서 그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했으나, 결국 본질의 과학으로서의 현상학을 거부하였다. 하이데거와 후설의 학문적 관계는 복잡하고 때로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은 "우정과 존경을 담아" 후설에게 헌정되었다. 1923년부터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뛰어난 강의를 하였고, 1928년 후설의 은퇴로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1927)에서 현존재(Dasein), 근본존재론(fundamental ontology),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 등의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여기서 현존재는 '거기에 있음'을 의미하며 인간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근본존재론은 다양한 존재 방식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구조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분석이 사물에 대한 의식(후설의 지향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향성이 가능하게 하는 사전 이론적 조건들의 해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설의 형식적 존재론(formal ontology)을 근본존재론으로 변형시키고, 초월적 의식(transcendental consciousness)을 현존재로 대체하였으며, 후설의 지향성을 배려(care) 또는 세계-내-존재의 개념으로 대체하였다. '존재와 시간'은 현대 유럽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되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데리다의 해체론 등 후대 사상가들에게 철학적 자극을 제공하였다. 이후 하이데거의 철학은 '전환'(die Kehre)을 겪어 그의 사유 방향이 재조정되었고, 이는 '기여들'(Contributions to Philosophy) 등의 후기 저작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과 후설의 현상학과의 비판적 교류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철학적 프로젝트의 중심을 이루었다.

<틀린 선택지>
1. 마르틴 하이데거는 1915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후설의 현상학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2.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의 초월적 의식을 지향성으로 대체하고, 근본존재론을 형식적 존재론으로 변형시켰다.
3. 하이데거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방식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그의 후기 저작에선 다루어지지 않았다.
4. 하이데거는 후설의 조교로 일하며 그의 현상학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존재와 시간'을 저술하였다.
5. 하이데거는 1928년 후설의 은퇴로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힌트>
1. 하이데거는 1915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후설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초기에는 마르부르크 대학이 아닌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쳤다.
2. 하이데거는 후설의 지향성을 배려 또는 세계-내-존재의 개념으로 대체하고, 형식적 존재론을 근본존재론으로 변형시켰다.
3. 하이데거의 후기 저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그의 철학적 프로젝트의 중심을 이루었다.
4. 하이데거는 후설의 조교로 일하며 그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으나, 결국 본질의 과학으로서의 현상학을 거부하였다.
5. 하이데거는 1928년 후설의 은퇴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존재와 시간'에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전면적으로 드러냈으며, 후설과의 학문적 연관성을 강조하며 그에게 책을 헌정했다.
-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거기에 있음'을 의미하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이라고 주장하며,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 하이데거는 형식적 존재론을 비판하고 다양한 존재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구조를 탐구하는 근본존재론을 주장했으며, 이는 후설의 초월적 관념론과는 거리가 멀다.
- 하이데거는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여 현존재의 세계-내-존재, 즉 인간 존재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실용주의 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그의 후기 철학은 언어와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분석철학의 언어적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

<힌트>
-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했지만, 결국 본질의 과학으로서의 현상학을 거부했다. 비록 '존재와 시간'을 후설에게 헌정했지만, 그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인간 존재 자체를 가리키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이라는 표현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은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지만, '존재와 시간'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 하이데거는 후설의 형식적 존재론을 비판하며 근본존재론을 주장한 것은 맞지만, 후설의 철학이 초월적 관념론이라는 언급은 지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하이데거가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통해 실용주의 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내용은 지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후기 철학이 언어와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는 내용은 지문에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분석철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 또한 지문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현존재(Dasein)"는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이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내-존재'라는 맥락을 포함하며, 마치 물고기가 물 안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근본존재론(Fundamental Ontology)"은 하이데거가 제안한 철학적 탐구의 한 방향으로, 이는 다양한 존재 방식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그 근본 구조에서부터 연구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색의 빛이 결국 단일한 빛에서 굴절되는 것과 흡사하다.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는 인간 존재를 세상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하이데거의 개념으로, 이는 마치 돛단배가 바닷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항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역시 그 삶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 방식을 설명한다.



(연습문제 2)


서양 철학은 존재(Being)와 존재자(beings)를 구분하는 존재론적 차이(ontological difference)를 간과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망각해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망각을 지적하며,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근본존재론(fundamental ontology)을 제시한다. 존재론적 탐구는 존재자에 관한 사실을 다루는 실존론적(ontical) 탐구와 구별되며,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이해하게 만드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근본존재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실존적 분석(existential analytic of Dasein)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다자인(Dasein)'은 '거기 있음' 또는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독특한 존재 방식을 나타낸다. 다자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고,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선택하고 실현해 나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또한 다자인은 '열림(openness)'이라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이해를 통해 다른 존재자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열림을 통해 다자인은 존재자들을 '무엇으로서' 받아들이는 '보기(taking-as)' 구조를 지니며, 이는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근본적 조건이다. 따라서 다자인의 실존적 분석은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모든 지역적 존재론(regional ontology)의 토대가 된다. 하이데거는 이를 위해 현상학적 방법론을 채택하는데, 이는 단순히 경험의 표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선험적 조건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현상학은 단지 선험적일 뿐 아니라 해석학적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해의 구조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존재를 해석한다. 이때 해석의 과정은 순환적이며, 선이해를 바탕으로 사물 자체에 집중하여 이해를 심화시키는 '해석학적 순환'을 거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재에 대한 이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발전되는 것이며, 철학적 탐구 역시 이러한 과정을 따른다. 결국 하이데거의 근본존재론은 인간의 실존적 구조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밝히고, 이를 통해 존재자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의미 있게 드러나는지를 설명하는 시도이다.

<틀린 선택지>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해의 구조를 무시하고, 오로지 선험적 조건들만을 강조하여 존재를 해석했다.
-다자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없는 존재자이며, 단순히 세계에 존재하는 것에 그쳐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수 없다.
-다자인의 실존적 분석은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는 데 부차적인 역할을 하며, 지역적 존재론의 토대를 이루지 못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존재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여 서양 철학이 존재의 의미를 망각하지 않도록 예방했다.
-다자인은 열림의 특징을 지니지 않으며,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이해를 통해 다른 존재자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
<힌트>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선험적일 뿐만 아니라 해석학적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해의 구조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존재를 해석한다.
-다자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고,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다자인의 실존적 분석은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모든 지역적 존재론의 토대가 된다.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간과하여 존재의 의미를 망각해왔다고 지적하였다.
-다자인은 열림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이해를 통해 다른 존재자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가 아니다.
-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탐구가 존재자에 대한 사실을 탐구하는 실존론적 탐구와 동일하다고 여긴다.
- 하이데거는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근본적 조건인 '보기' 구조가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이해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경험의 표면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분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순환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해의 구조를 배제하고 순수한 직관을 통해 존재를 이해하는 것을 강조한다.

<힌트>
-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탐구가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이해하게 하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존재자의 사실 자체를 다루는 실존론적 탐구와는 다르다.
- 하이데거는 '보기' 구조가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이해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경험의 표면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인 의미와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순환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해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며, 이를 통해 존재에 대한 이해를 점진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존재론적 차이(ontological difference)"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는 개념으로, 이는 하이데거가 '존재의 의미'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기준점이 된다. 이는 마치 그림과 캔버스를 혼동하지 않고, 둘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림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와 같다.

-"다자인(Dasein)"은 '거기 있음' 또는 '존재하는 것'으로 번역되며,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의 독특한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선택하고 실현해 나가는, 단순한 생존 이상의 존재 방식을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자인은 자신을 통하여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은 이해의 과정이 선이해를 바탕으로 사물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이해가 심화되는 순환적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처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을 다시 읽으며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연습문제 3)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분석을 통해 인간이 세계의 사물을 어떻게 만나는지 탐구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물을 특정한 과업을 위한 도구(조리, 글쓰기, 헤어 케어 등)로서 만나며, 이러한 도구와의 가장 근원적인 관계는 그것을 응시하거나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아무 문제 없이 조작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나는 사물은 '도구적 존재'(ready-to-hand, Zuhandenheit)이라는 독특한 존재 방식을 지니며, 이는 도구를 사용할 때 그 도구가 현상학적으로 투명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숙련된 목수가 망치질을 할 때, 그는 망치, 못, 작업대 등을 독립적인 객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업에 몰두하여 자신이 주체라는 인식조차 사라진다. 이때의 의식은 하이데거가 '선견'(circumspectio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주체-객체의 구분이 없는 형태의 인식이다. 반면, 자연과학적 실천이나 철학적 성찰 등에서 사물을 이론적으로 관찰할 때 우리는 사물을 '전재적 존재'(present-at-hand, Vorhandenheit)로서 만나게 되는데, 이때 사물은 객관적 속성을 지닌 독립적인 객체로 드러나며 인간은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주체로 나타난다. 또한 '비-도구적 존재'(un-ready-to-hand)의 존재 방식은 도구의 고장이나 부재, 방해 등으로 인해 숙련된 활동이 방해받을 때 나타나며, 이때 사물은 더 이상 현상학적으로 투명하지 않지만 여전히 특정한 도구적 문맥에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펑크 난 타이어는 단순한 고무 덩어리가 아니라 운전을 방해하는 손상된 도구로 인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부드러운 활동을 회복하고자 하는 실천적 문제 해결자로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 이론적 지식을 활용하여 사물을 '전재적 존재'로 보고 접근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사물 만남 방식을 특징짓지 않으며 이는 파생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해석자들은 완전히 투명한 '도구적 존재'의 상태는 이상적인 것으로 실제로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미세한 주관적 의식이나 방해가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의 최소한의 구분이 유지되며 이는 '비-도구적 존재'과 '도구적 존재'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결국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분리된 주체로서가 아니라 도구와의 실천적이고 몰입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는 인간이 사물을 주체와 객체로 명확히 구분하며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세계와의 만남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 숙련된 목수가 작업 중에 망치의 객관적 속성과 독립적인 객체로서의 도구를 인식하는 것이 '도구적 존재'의 상태를 나타낸다.
- '비-도구적 존재'의 존재 방식에서는 도구가 완벽히 작동하여 인간이 아무 문제 없이 숙련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 일부 해석자들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져 '도구적 존재'의 상태를 항상 경험한다고 강조한다.
-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도구를 응시하고 이론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힌트>
- 하이데거는 우리가 사물을 주체와 객체로 명확히 구분하며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세계를 만난다고 주장한다.
- '도구적 존재'의 상태에서는 도구가 현상학적으로 투명해져서 숙련된 목수는 망치를 독립적인 객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 '비-도구적 존재'은 도구의 고장이나 부재로 인해 활동이 방해받을 때 나타나며, 도구가 완벽히 작동하는 상태가 아니다.
- 일부 해석자들은 '도구적 존재'의 완전히 투명한 상태는 이상적이며, 실제로는 미세한 주관적 의식이나 방해가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와 가장 근본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이 도구를 이론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몰입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도구적 존재(ready-to-hand, Zuhandenheit)"은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그 존재가 인지에서 투명하게 사라지는 존재 방식으로, 예를 들어 숙련된 피아니스트가 연주에 몰입할 때 피아노의 키와 자신의 손가락 구분이 사라지는 상태와 유사하다.

-"선견(circumspection)"은 하이데거가 제시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는 인식 형태로, 도구와의 심층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몰입된 의식을 뜻하며, 이는 마치 춤추는 사람이 파트너와 하나가 되어 춤에 완전히 몰두하는 상태와 같다.

-"비-도구적 존재(un-ready-to-hand)"은 도구의 고장이나 부재로 인해 사용이 방해받을 때 나타나는 존재 방식으로, 이는 일상적인 흐름이 깨져 도구를 다시 문제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며, 예를 들어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 났을 때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컴퓨터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경우이다.




(연습문제 4)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현존재(Dasein)의 본질적 특징은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이다. 그는 세계-내-존재를 단순히 존재와 내재성, 세계의 세 부분이 우연히 합쳐진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통일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여기서 '내재성'은 단순한 공간적 위치를 의미하지 않으며, 현존재는 GPS로 측정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현존재는 세계 안에 '거주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곳에 속하고 익숙한 장소를 지닌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세계에 거주하며, 이것이 세계-내-존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현존재가 거주하는 세계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의 '관여'(Bewandtnis) 개념을 살펴봐야 한다. 관여란 현존재의 일상적 활동 속에서 도구들이 수행하는 역할, 즉 도구들이 어떻게 현존재의 활동에 관여하는지를 나타낸다. 관여는 독립적인 구조가 아니라 하이데거가 '관여의 총체성'(totality of involvements)이라고 부르는 의미의 네트워크 안의 하나의 연결고리이다. 예를 들어, 망치는 못을 박는 데 관여하고, 못을 박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고정시키는 데 관여하며, 이는 다시 현존재를 악천후로부터 보호하는 데 관여한다. 이러한 관여의 총체성은 일상적 도구적 실천의 맥락을 이루며, 도구들의 의미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망치는 그것이 다른 도구들과 현존재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따라 그 자체로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총체성은 '세계'를 구성하며, 이것이 하이데거가 사용하는 세계의 한 의미이다. 관여의 총체성의 기저에는 '위하여-그-어떤-것'(for-the-sake-of-which)이 있는데, 이는 현존재가 무언가로 될 수 있는 가능성들 중 하나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지금 컴퓨터를 사용하여 백과사전 항목을 작성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존재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위하여-그-어떤-것'은 현존재의 프로젝트와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도구들이 어떻게 의미 있게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또한 이러한 관여의 네트워크는 상호 연결되어 거대한 의미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이것이 현존재가 세계에 항상 이미 익숙한 이유이다. 방해나 중단이 발생하면 관여의 총체성, 즉 세계가 드러나며, 이는 도구들이 '비-도구적 존재'(un-ready-to-hand)의 상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이데거는 세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로서 '세계성'(worldhood)을 제시하는데, 이는 모든 구체적인 관여의 총체성이 공유하는 추상적인 네트워크의 방식이다.

<틀린 선택지>
-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를 존재와 내재성, 세계의 세 부분이 우연히 합쳐진 것으로 간주하며, 통일적인 현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단순한 공간적 위치를 의미하며, GPS로 측정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 관여의 총체성은 도구들의 독립적인 구조로서 각 도구는 다른 도구들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 현존재는 세계에 낯설고 익숙하지 않으므로, 관여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세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 하이데거는 세계성(worldhood)을 도구들의 물리적 속성으로 정의하며, 이는 관여의 총체성과 무관하다.
<힌트>
-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를 단순한 세 부분의 합이 아니라 현존재의 통일적인 현상으로 보았으며, 우연히 합쳐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
- 현존재는 공간적 위치로 정의되지 않으며, GPS로 측정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 관여의 총체성은 도구들의 독립적인 구조가 아니라, 도구들이 현존재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나타내는 의미의 네트워크이다.
- 현존재는 세계에 항상 이미 익숙하며, 낯설지 않은 존재로서 관여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 이유가 설명된다.
- 하이데거는 세계성을 도구들의 물리적 속성이 아닌, 모든 구체적인 관여의 총체성이 공유하는 추상적인 네트워크의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는 세계 안에 '거주한다'고 표현되며, 이는 현존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에 내던져진 피투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 하이데거는 '관여' 개념을 통해 현존재가 세계와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 하이데거는 도구의 의미는 그것이 만들어진 재료나 제작 방식과 같은 물질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 하이데거의 '비-도구적 존재'는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특정한 상황에 얽매이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 하이데거는 세계성을 '관여의 총체성'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며, 이는 구체적인 상황과 무관한 추상적인 원리를 나타낸다.

<힌트>
-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거주한다'는 표현은 현존재가 세계와 친숙하고 익숙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 하이데거의 '관여' 개념은 현존재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존재는 관여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고, 세계의 의미를 구성한다.
- 하이데거는 도구의 의미가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 즉 다른 도구들과 현존재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 하이데거의 '비-도구적 존재'는 도구가 현존재의 일상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드러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다.
- 하이데거는 세계성을 '모든 구체적인 관여의 총체성이 공유하는 추상적인 네트워크의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구체적인 관여의 총체성을 포괄하는 더욱 근본적인 차원의 개념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는 현존재(Dasein)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속하고 익숙한 장소를 지니며 살아가는 통합적인 존재 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GPS로 측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 안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관여의 총체성(totality of involvements)"은 도구들이 현존재의 일상적 활동과 연관되어 상호작용하는 의미의 네트워크로, 예를 들어 망치가 못을 박는 데 사용되고, 그 못이 무엇인가를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현존재의 보호를 위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위하여-그-어떤-것(for-the-sake-of-which)"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특정한 방향으로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목표나 가능성으로, 예를 들어 필자가 컴퓨터를 사용해 학술 글을 쓴다면, 이는 학자로서의 존재를 구현하기 위한 목표로 작용한다.


(연습문제 5)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관점에 비판을 제기하며, 세계를 주체가 만나는 '전재적 존재(present-at-hand)'의 집합으로 파악하는 데카르트의 견해에 반대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전재적 존재에 '가치 술어(value-predicate)'를 부가함으로써 의미의 세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Dasein)가 본래부터 맥락적 의미를 지닌 '도구적 존재(readiness-to-hand)'인 도구(equipment)와 접촉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소리를 들을 때 순수한 소음이 아닌 '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나 '오토바이 소리'와 같은 의미 있는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처음부터 도구적 존재와 접촉하며, 이를 분해함으로써 전재적 존재에 도달한다고 본다. 그는 가치 술어를 전재적 존재에 추가하는 것은 도구적 의미(totality of involvements)를 생성하지 못하며, 단지 더 많은 전재적 존재를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가치 술어가 전재적 존재의 특징인 정태적 속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부는 하이데거의 논증이 불완전하다고 지적하며, 가치 술어를 맥락 의존적인 속성으로 간주하여 도구적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드레이퍼스는 여기서 '아는 것(know-that)'과 '할 줄 아는 것(know-how)'의 차이를 강조하며, 도구적 의미는 후자에 속하며 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또한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공간성이 단순히 데카르트적 좌표 공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 제거(de-severance)'라는 특징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천적 활동 범위에 따른 가까움과 멂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과 달리, 인간 존재의 참여와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말파스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이 더 근본적인 객관적이고 상호주관적인 공간을 전제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하이데거가 신체성에 대한 논의를 회피함으로써 그의 공간성 이론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 존재의 신체성이 실존적 공간성에 의존한다고 보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더 타당해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하이데거의 공간성과 신체성에 대한 처리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틀린 선택지>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지지하며, 인간 존재가 먼저 '전재적 존재'와 접촉하고 이를 통하여 '도구적 존재'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드레이퍼스는 도구적 의미가 '아는 것(know-that)'에 속하며 '할 줄 아는 것(know-how)'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이 신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물리적 거리를 강조하며 인간 존재의 실천적 활동 범위보다 중요한 요소로 본다.
-가치 술어를 전재적 존재에 부가하면 도구적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힌트>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 존재가 먼저 '도구적 존재'와 접촉하고 이를 분해하여 '전재적 존재'에 도달한다고 주장하였다.
-드레이퍼스는 도구적 의미가 '할 줄 아는 것(know-how)'에 속하며 '아는 것(know-that)'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그가 도구적 의미를 '아는 것'에 속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이 신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성 논의의 부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비판하였다.
-하이데거는 물리적 거리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천적 활동 범위에 따른 가까움과 멂을 강조하였다. 즉, 그는 물리적 거리보다 실존적 공간성을 중요시하였다.
-하이데거는 가치 술어를 전재적 존재에 부가해도 도구적 의미를 생성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것이 단지 더 많은 전재적 존재를 만들 뿐이라고 보았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는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맥락을 통해 전재적 존재에 가치 술어를 부여하고 의미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와 달리 인간 존재가 물리적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하이데거에 따르면, '도구적 존재'는 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이를 인식함으로써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 드레이퍼스는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의 차이를 통해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도구적 의미가 '아는 것'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을 비판하며, 신체성이 실존적 공간성에 선행한다는 점을 들어 하이데거의 이론을 지지한다.

<힌트>
-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와 반대로, 인간이 맥락적 의미를 지닌 '도구적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의미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가치 술어를 전재적 존재에 추가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전재적 존재를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다.
-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적 좌표 공간이 아닌, 인간 존재의 실천적 활동 범위에 따른 '거리 제거'라는 개념을 통해 실존적 공간성을 설명한다.
- 지문에서 '도구적 존재'가 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언급은 없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가 '도구적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한다.
- 드레이퍼스는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의 차이를 통해 하이데거의 도구적 의미가 '할 줄 아는 것'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을 비판하며, 신체성이 실존적 공간성에 선행한다는 점을 들어 하이데거의 이론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즉,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도구적 존재(readiness-to-hand)"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도구와 상호작용하며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순히 나무 조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망치'라는 도구로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한다.

-"거리 제거(de-severance)"는 실존적 공간에서 인간 존재의 참여와 실천에 따라 거리가 정의된다는 하이데거의 관점으로, 예를 들어 물리적 거리가 멀어도 마음속의 가까움을 느끼는 사람 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물리적 거리와는 다른 차원의 공간 경험을 제시한다.

-"아는 것(know-that)"과 "할 줄 아는 것(know-how)"의 차이는 드레이퍼스가 강조한 개념으로, 전자는 이론적 지식을 의미하며 후자는 실천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자전거 타기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연습문제 6)

하이데거는 일상적 존재자인 '현존재(Dasein)'가 누구인지를 탐구하면서, 데카르트식의 '사고하는 실체로서의 나'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에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함께-존재(Mitsein)'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이 단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해안에 정박된 배는 여행을 떠나는 지인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며, 심지어 낯선 배라도 타인을 암시한다. 이렇게 도구를 통해 '만나는' 타인은 단순히 주어진 사물에 추가된 개념이 아니라, 항상 나와 공유되는 세계에서부터 나타난다. 따라서 현존재의 존재 방식은 본질적으로 '함께-세상-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함께-존재'의 의미이다. 하이데거에게서 '타인들(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자기자신을 직면(식별)하지 않는 이들, 즉 '그들(das Man)'이다. 이는 문화적으로 규정된 규범과 관행을 통해 나타나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누구'이다. 예를 들어, 대화 시에 적절한 거리 유지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며, 이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는 문화와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지며, 현존재의 일상 세계는 본질적으로 공유된 세계이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하이데거가 직접적인 대인 관계를 간과하거나 오해함으로써 우리의 사회적 존재의 근본적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올라프손은 현존재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사회적으로 공유된 의미를 발견하는지를 하이데거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하이데거가 이러한 사회적 과정을 단순한 발달적 또는 인과적 요인으로 보고, 현존재의 선험적 구조로 간주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된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사회적 과정이 단순한 부수적 요인이 아니라면, 하이데거의 '함께-존재' 개념은 불완전한 설명에 그칠 수 있다. 결국, 현존재의 세계가 문화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함께-존재'는 우리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며, 이는 개인과 세계의 관계성을 재고하게 만든다.

<틀린 선택지>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없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개인의 자율성이 본질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은 오로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며, 타인의 삶과는 관련이 없다.
'그들(das Man)'은 하이데거에게서 자신을 직면하는 독특한 사람들로서, 보통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사회적 공유된 의미 발견 과정을 과도하게 강조했다고 지적한다.
올라프손은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선험적 구조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사회적 과정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힌트>
지문에서는 하이데거가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함께-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지문에 따르면 도구들은 타인의 삶과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하며, 개인적인 목적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의 '그들(das Man)'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지 않는 이들이며, 사회적 규범과 관행을 통해 나타난다.
지문에서는 비평가들이 하이데거가 사회적 존재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라프손은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사회적 공유된 의미 발견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틀린 선택지>
-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은 오직 타인의 삶과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그들(das Man)'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별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과 관행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는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 시 적절한 거리 유지 방식과 같은 사회적 규범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 하이데거에 대한 비평가들은, 하이데거가 현존재를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고 고립된 개인으로만 이해한다고 비판한다.
- 하이데거는 '함께-존재' 개념을 통해 현존재의 세계가 역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힌트>
- 하이데거는 도구가 타인의 삶과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문에서는 '단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라고 언급하며, 이는 개인적인 목적 또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하이데거는 '그들(das Man)'을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식별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현존재가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별한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그들' 속에서 현존재가 자신의 개별성을 희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하이데거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과 관행이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는 지문에서 언급된 '문화마다 다른 대화 시 거리 유지 방식' 예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하이데거에 대한 비평가들은 하이데거가 직접적인 대인 관계를 간과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하이데거가 현존재를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비평가들의 비판은 하이데거의 '함께-존재' 개념이 사회적 존재의 특정 측면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 하이데거는 '함께-존재' 개념을 통해 현존재의 세계가 역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이는 지문의 논리적 흐름을 벗어난 과도한 해석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함께-존재(Mitsein)"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개인이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항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이는 우리의 도구와 사물들이 단지 개인의 목적을 넘어서 타인의 삶과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들(das Man)"은 하이데거가 정의한 용어로, 개인이 아닌 익명적이고 비개별적인 다수로서의 타인들을 가리키며, 이는 사회의 규범과 관행을 통해 우리의 행동 기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존재의 선험적 구조"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이를 단순한 발달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대신, 우리의 존재 방식에 본질적이고 선험적인 요소로 보지 않았다는 비판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희망하는 주제를 던져주시면 선정해서 지문으로 제작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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